이태준
개요
이태준 선생은 대한민국의 의료인 출신 독립운동가이다.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으며 의료활동과 독립운동을 병행한 인물이다. 몽골에 가서 의료활동을 할 당시 얻은 별명으로는 '몽골의 슈바이처'가 있다.
정보
- 출생: 1883년 11월 21일, 경상도 함안도호부 평관면 평광리(現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평광마을)
- 사망: 1921년 2월(항년 38세), 대몽골국 니슬렐 후레(現 몽골 울란바토르)
- 본관: 인천 이씨
- 자: 원일(元一)
- 호: 대암(大岩)
- 학력: 세브란스의학 (졸업)
- 종교: 그리스도교 (개신교)
생애
세브란스의학교
1911년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하여 의사가 되었고 이때부터 안창호 선생과 친분을 쌓아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몽골
1914년 몽골에 가서 의료활동과 독립운동을 병행했다. 몽골 마지막 칸 복드 칸의 주치의였다고 하며,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동의의국(同義醫局)을 세워 의료활동을 병행했다고 한다. 특히 당시 몽골인의 70%가 걸렸다던 성병 치료에 탁월했다고 한다. 그리고 1919년 당시 몽골 최고 훈장이었던 '에르데니인 오치르(ᠡᠷᠳᠡᠨᠢ ᠶᠢᠨ ᠸᠴᠢᠷ/Эрдэнийн Очир)'를 받았다고 한다.
피살
동시에 개신교 선교 활동과 의열단에 가입하고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금 조달 등의 독립운동 중 당시 몽골의 지배자였던 '미친 남작'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의 사병들에게 붙잡혔고, 1921년 2월 2일 결국 피살됐다.
기타
몽골의 슈바이처
몽골 한인사회가 '몽골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독립운동가 이태준 선생을 기리기 위해 대암장학회를 발족했다. [1]
이태준 기념관
함안군은 이태준 선생의 헌신을 기리기 위해 이태준 선생 기념관을 세웠다. [2]
다큐멘터리=
임시정부 100주년 특집으로 이태준 선생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