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왕본풀이
정의
제주도 지역의 무당굿에서 구연되는 서사무가로서 모든 굿의 맨 처음에 시행되는 초감제 때에서도 가장 먼저 불리는 부분이다. 초감제의 시작에서는 굿하는 장소를 설명하기 위해 천지혼합 때로 거슬러 올라가서 하늘과 땅이 분리되는 천지개벽, 일월성신의 발생 등 자연현상의 형성과 국토,국가의 형성 등 인문 현상의 형성을 노래한다.천지왕본풀이는 천지가 개벽하는 우주기원과 관련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불리는 것이다.
줄거리
태초에 천지가 서로 맞붙어 혼합되고 있었는데,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에 하늘과 땅의 머리가 모두 열리며 천지가 금이 나 개벽하였다. 이때, 하늘에서는 청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흑이슬이 솟아나 서로 합수하여 만물이 생겨났다(음양오행)., 먼저 여러 가지 별이 생기고, 다음에 해와 둘이 둘씩이나 생겨났다. 이 때문에 낮에는 더워서 살 수 없고,밤에는 추워서 살 수 없게 되어 있었다.이때, 하늘의 천지왕이 지상에 내려와 총맹부인과 동침을 하고 돌아갔는데, 부인은 아들 형제를 낳았다. 천지왕이 남기고 간 말에 따라 형은 대별왕, 아우는 소별왕이라 이름을 지었다. 형제는 자라나 아버지를 찾아가려고 천지왕이 남기고 간 박씨를 심었다. 그 뒤 박씨는 싹이 나고 자라서 하늘로 줄기가 뻗어 갔다. 형제는 그 박 줄을 타고 아버지를 찾아가니 천지왕은 형인 대별왕에게 이승을, 아우인 소별왕에게 저승을 차지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승을 탐낸 아우는 서로 경쟁하여 이기는 자가 이승을 차지하자는 내기를 청하였다(인세 경쟁 모티프). 동생은 먼저 수수께끼로 다투었으나 이기지 못하자 한번 더 하자고 졸라서 서천꽃밭에 꽃을 심어 더 번성하게 하는 이(꽃피우기 화소)가 이승을 차지하자는 내기를 하였다. 이에 천지왕은 대별왕과 소별왕에게 은대야에 심은 꽃나무를 내어 주고서 꽃을 훌륭하게 피운 사람이 이승을 맡고 그리 못한 사람은 저승을 맡으라 했다. 꽃을 가꾸는 데 있어서 대별왕의 꽃은 번성했지만 소별왕의 꽃은 번성하지 못했다. 이에 소별왕이 대별왕에게 잠을 자자고 하고는 대별왕이 잠든 사이에 몰래 대별왕의 꽃을 자기 앞에 가져다 놓고 자신의 꽃을 대별왕 앞에 가져다 놓았다. 잠에서 깬 대별왕은 꽃이 바뀐 것을 알았으나 소별왕에게 이승을 차지하도록 하고 자신은 저승으로 갔다. 소별왕이 이승에 와서 보니 해도 두 개가 뜨고 달도 두 개가 뜨고, 초목이나 짐승도 말을 하고, 인간 세상에는 도둑,불화,간음이 성행하고 있었다. 이에 소별왕은 형에게 이 혼란을 바로잡아 주도록 부탁했다. 대별왕은 활과 살을 가지고 해와 달 하나씩을 쏘아 바다에 던져 하나씩만 남기고, 송피가루 닷 말 되를 뿌려서 짐승들과 초목들이 말을 못하게 하였다. 또한, 귀신과 인간은 저울질을 하여 백 근이 넘는 것은 인간, 못한 것은 귀신으로 각각 보내어 인간과 귀신을 구별하여 주었다.
분석
궁산선비와 명월각시가 부부로 결합하고 궁산이가 내기 장기에 져서 부인을 배 선비에게 빼앗겼다가 다시 만나 재결합한다는 내용은 <아내의 초상화>, <새신랑>, <우렁각시> 등 여러 가지 민담 유형과 유사하다. 그러나 전체 이야기의 틀은 아내 걸고 내기하기 유형의 설화로서,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 예성강(禮成江) 조에 수록된 하두강(賀頭綱)의 이야기와 닮았다. 또한 아내가 정절을 지키고 남편과 재회한다는 내용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 도미(都彌) 조의 <도미처설화>와도 상통한다. 부부의 결합, 시련과 분리, 시련의 극복과 부부 재결합으로 전개되는 <일월노리푸념>의 서사 전개는 가정의 탄생과 가정의 시련, 가정의 완성이라는 가정신화의 서사구조로서 국조(國祖)의 탄생과 시련, 그리고 시련을 극복하고 국가를 창건하거나 왕으로 즉위하고 신이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나는 건국신화의 서사구조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
<일월노리푸념>은 지상의 부부가 천상의 일신과 월신이 된다는 신화로 천상의 해와 달이 지상의 인간 남녀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천상의 태양과 태음이 지상의 물과 불, 인간의 여성과 남성과 연계된다는 음양사상론적 사고에서 형성되었다고 본다. 일월신과 인간의 남녀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신화소는 고구려 『모두루묘지(牟頭婁墓誌)』에 기록된 <주몽신화>에서부터 신라의 일월신화인 <연오랑세오녀(燕烏郞細烏女)> 그리고 전래동화로 널리 알려진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 널리 전승된다.
의의와 평가
<일월노리푸념>은 가정신화이면서 동시에 무속서사시로서 관중의 흥미를 위하여 연행되는 여흥굿에서 구연된 무가이다. 남주인공 궁산이는 어리석고 무능하며 여주인공 명월각시는 현명하고 유능한 인물이다. 가정의 시련은 궁산이의 어리석음과 허욕에서 비롯되고 이를 극복하고 타개하는 것은 명월각시의 굳건한 정절의식과 지혜였다. 이러한 작품의 세계는 무속사회 여성층의 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여성의 우월성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서사무가는 대부분 여성이 주인공이고 가정을 비롯하여 국가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의 위기와 역경을 여성이 타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가부장제사회에서 부자 중심의 가족관과는 다른 모권사회의 부부 중심 가족관을 보여 주는 것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일월노리푸념 발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