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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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글라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6일 (목) 21:09 판 (중화전 및 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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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1]

개요


  • 위치 :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99 (정동)
  • 사적 제 124호
  • 대한문, 중화전, 중명전, 석조전, 정관헌 등

정동에 위치한 조선과 대한 제국의 궁궐이다. 조선 초기에는 월산대군의 사가였는데 임진왜란 후 선조가 임시거처로 사용하면서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다가 광해군 때 정식 궁궐로 승격돼 경운궁으로 개칭되었다.
을미사변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구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후 1897년 2월에 경운궁으로 환궁하면서부터 역사에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대한제국이라는 황제국을 선포한 뒤에 황궁으로서의 규모와 격식을 갖추게 되었지만 1904년 대화재로 중심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다. 1907년에는 고종이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되고 이때부터 경운궁은 고종의 궁호인 '덕수'를 따 덕수궁으로 불리게 되었다.

연혁

연도 내용
1593 임진왜란 후 월산대군 사저를 정릉동 행궁으로 삼음
1611 광해군 때 경운궁으로 승격
1896 아관파천
1897 고종의 환궁과 대한제국 선포
1904 경운궁 대화재
1905 중명전에서 을사늑약 체결
1906 주요 전각 복원공사
1907 고종 강제퇴위와 덕수궁 개칭
1910 석조전 준공
1919 고종 승하
2007 덕수궁 복원공사 시작
2023 고종의 길 완공
2023 돈덕전 복원

특징

덕수궁 지도[2]




건물 배치는 크게 정전(중화전)과 침전(함녕전)이 있는 부분 / 선원전이 있는 부분 / 서양식 건물인 중명전이 있는 부분으로 나뉜다.
궁의 배치는 1904년 화재 뒤로 변화되었고 서양식 건물들이 지어지면서 기존의 건물과 조화를 잃게 되었다. 특히 나중에 지어진 석조전 등은 기존 정전 건물들과 축이 일치되지 않고 그 위치도 정전과 인접하게 대규모로 지어지면서 종래의 궁궐의 공간적 규범을 깨뜨리고 말았다.
19세기 이후 들어선 궁내 서양식 가운데 돈덕전과 석조전이 가장 큰 규모의 건물이었다.





건축물

주요 근대 건축물

중명전 석조전 돈덕전 정관헌
[3] [4] [5] [6]

대한문

  • 덕수궁의 정문
  •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문
  • 다포식 우진각지붕
과거 경운궁의 정문은 중화문 건너편 남쪽에 위치한 인화문이었으나 대화재 이후에 대안문이 대한문으로 개칭되고 새로운 정문이 되었다. 대한은 한양이 창대해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지금의 대한문은 1970년대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33m 뒤로 밀려난 곳에 위치하게 되었다.

중화전 및 중화문


중화전전경.jpeg
답도


중화전과 중화문은 대한제국 황제가 하례를 받거나 국가 행사를 거행하던 정전과 그 정문을 말한다. 중화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성정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중화전과 중화문에는 답도(계단)에 봉황이 새겨져 있는 다른 정전들과 다르게 대한제국의 황제를 상징하는 용 두 마리가 있다.
1985년 보물 제 819호로 지정되었다.



- 중화문

  • 중화전의 정문
  • 정면 3칸, 측면 2칸
  • 다포계 팔작지붕
중화문은 중화전과 함께 지어진 중화전의 정문이다. 원래 문 양쪽에 행각이 있었으나 일제에 의해 헐려 현재는 동쪽에만 그 일부가 남아 있다.
과거 경운궁의 정문이었던 인화문이 중화문 앞에 있었다.

- 중화전

  • 덕수궁의 정전
  • 정면 5칸, 측면 4칸
  • 겹처마 팔작지붕
1906년 지어질 당시에는 2층 전각이었으나 화재로 소실 뒤 다시 중건한 것이 현재의 단층 중화전이다.

석어당

즉조당 및 준명당

함녕전 및 광명문

덕홍전

참고문헌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5366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