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오일쇼크
개요
석유파동, 유류파동으로도 불리는 오일쇼크는 두 차례에 걸친 석유 공급 부족과 석유 가격 폭등으로 세계 경제가 큰 혼란과 어려움을 겪은 일이다. 1973~1974년 중동 전쟁 시기 아랍의 석유 수출 국가에서 석유 자원을 무기화한 정책과 1978~1980년의 이란 혁명으로 석유 생산량이 대폭 감축되어 석유 공급이 부족해지자 국제 석유 가격이 급등했고, 결과적으로 전 세계가 경제 위기를 겪었다. 제1차 오일쇼크로 인한 불황은 1975년부터 미국, 유럽, 일본 등의 국가경제가 호전되면서 경기 상승으로 전환되었으나 1978년, 제2차 오일쇼크는 한국 경제에 거대한 타격을 주었고 경기 침체는 유신정권이 끝난 후인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제2차 오일쇼크의 타격
제1차 석유파동을 겪은 한국정부는 1975년 말 ‘물가안정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물가의 행정규제를 강화하였고, 그 결과 물가가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물가안정은 근본적인 인플레이션이나 통화팽창의 문제점을 해소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기보다는 물가 압력을 단순히 잠재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잠시 덮어두었던 경제 위기는 1978년 12월 발생해 1981년 말까지 이어진 제2차 오일쇼크와 함께 수면 위로 다시금 떠올랐다. 한국경제는 1979년 상반기까지 10%이상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으나 하반기부터 국내외 수요가 빠르게 둔화되어 6.4%로 낮아졌다. 석유 가격 등 원자재 가격의 상승 문제뿐만 아니라 중화학공업 중복, 과잉 집중투자 문제로 중화학공업의 생산률이 크게 떨어진 것 등이 문제가 요인이 되어 인플레이션의 압력이 상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