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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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만 (宋秀萬)

송수만


인물

대한제국기 보안회의 조직과 을사조약 반대운동 등을 전개한 항일운동가이다.

  • 성별 : 남성
  • 출생 : 1857년
  • 사망 : 미상
  • 본관 : 여산(礪山)
  • 자 : 성난(聖煖)
  • 호 : 성암(醒菴)

생애

1875년(고종 12) 무과에 급제, 부장(部將), 중추원 의관(議官) 등을 지냈다.

보안회 조직

189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시해에 동조한 대신들을 제거하려다가 실패하였고, 1904년 일본이 한일의정서(韓日議政書)를 체결하고 한국의 황무지개간권을 요구하자 보안회(保安會)를 조직, 이를 극력반대하여 마침내 철회시켰다.

이 때 일본군에게 연금되어 문초를 받았으나 끝내 항거하고 3개월 만에 풀려나왔다. 1905년 가을 을사조약 직전에 조약반대운동을 사전에 막으려는 일본군의 계획에 의하여 허겸(許蒹) 등 10여 명과 함께 다시 구금되었다가 11월 17일 조약이 체결된 뒤 석방되었다. 그 뒤 연설과 격문 등으로 일제에 항거하였다.


*천도교 창건 및 조직 정비

손병희는 동학의 교주가 된 초기에는 정치와 종교 간의 불가분적 관계를 강조하면서[1] 동학에서의 여러 가지 개혁적인 시도를 감행했으나 실패했고, 도리어 일제에 의해 역이용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걸고 1905년 교명을 '천도교'로 개칭하면서 새로운 교리와 체제를 확립하기 시작하였다.

최시형의 순교가 있고 난 뒤, 손병희는 사태를 수습하고 조직을 재정비하는 데 힘썼다. 그러나 관헌의 추적이 심하자 1901년 3월 일본으로 피신했고, 그 해 9월 일시 귀국했다가 ‘세계의 대세’를 깨닫기 위해 1902년 3월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가려 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일본에 머물게 되었다.

그곳에서 망명중이던 개화파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인식을 갖추게 된 한편, 국내와도 꾸준히 연락하면서 교인들을 규합하고 동학을 재정비하려 노력하였다.

그런데 손병희의 일본 체류는 그의 사상적 폭이 넓어지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탄력성을 증대시킨 반면, 일본의 제국주의 세력에 대한 동학교도들의 민족적 저항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1904년 8월 말부터 전국에 걸쳐 조직되기 시작한 '진보회'는 원래 동학교도들이 기존 정치체제의 개혁 세력으로서 참여하기 위한 기구였으나, 이용구의 주도하에 송병준의 일진회와 합하고 친일단체화하였다.

이에 손병희는 교정일치론을 철회하고 정치적 관심은 아예 포기하였으며, 종교로서의 동학을 고수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꾸었다. 따라서 1905년 12월 1일 '동학'을 '천도교'로 바꾸어 세상에 널리 알렸고, 이듬해 1월에는 귀국하여 교회를 재조직하는 데 착수했으며, <천도교대헌>을 반포하고 새로운 교단조직을 만들었다.


*천도교리의 체계화

이후 손병희는 천도교단의 중앙과 지방조직을 정비하는 한편, 천도교리의 체계화에도 노력하였다.

각종 교리서들이 천도교중앙총부 명의로 편찬되었다. 특히 1907년 출간된 『대종정의』에서는 '인내천'[2]을 천도교의 교의로 공식화하였다.

이후 손병희와 천도교단에서는 서양의 근대사상을 수용하여 인내천 교리에 대한 체계화 작업을 계속했다.

이에 따라 인내천은 한편에서 천도교 종교의식의 원천이 되어 온갖 도법과 교화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천도교 정치사상의 근저가 되어 온갖 이론과 행동을 규정짓게 되었다.

즉 천도교에서는 '보국안민'[3], '포덕천하'[4], '광제창생'[5]을 통한 지상천국 건설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평가

  •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건국훈장은 대한민국 국가 수립에 뚜렷한 공을 세운 자나 국가의 기초를 다지는 데 뚜렷한 공적이 있다고 평가되는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 일제강점기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손병희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민족의 영웅', '조선 독립의 거인' 등으로 굉장히 높았다. 해방을 맞아 귀국한 김구를 비롯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간부들은 손병희 선생을 '독립운동의 근원지'라고 평가하였다.
  • 1992년 3월 및 2019년 3월에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6]


각주

  1. 교정일치론.
  2. 천도교의 기본 사상으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말.
  3. 나랏일을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
  4. 덕을 천하에 편다는 뜻으로, 세상에 천도교를 널리 보급함을 이르는 말.
  5. 널리 백성을 구제함
  6. 국가보훈처가 선정한다.


참고문헌

  • 『기려수필』(송상도, 국사편찬위원회, 1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