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원각사지
원각사
개요
오늘날의 탑골공원 위치에 자리했던 사찰이다.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정책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사찰로서 보호되던 절이었으나 연산군에 의해 승려들이 떠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역사
원래 명칭은 흥복사였으며 조선 건국 이후 도성에 세워졌다.
세조 10년(1464) 5월에 중건 및 원각사로 개명되었다.
같은 해 6월에 조성도감이 마련되면서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되었고 1년 뒤인 세조 11년(1465) 4월에 완공되었다. 당시 세조가 참석해 낙성식을 열기도 했다.
조선은 건국 이후 숭유억불을 내세웠으나 원각사에서 왕실의 기복, 기청제, 기우제를 지내는 등 이 곳은 민생 안정을 기원하는 사찰이었다. 또한 원각사의 동남쪽에는 어실이 조성되어 있었고, 예종이 원각사에서 세조의 백일재를 지내기도 했다.
이후 유생들을 중심으로 불교를 배척하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성종 5년(1474)에 어실 폐지, 수직군사 철수 등 원각사의 지위가 약화되었다.
성종 19년(1488)에 원각사에 화재가 발생했으나 대신들의 반대로 중수가 진행되지 못하였다.
연산군 10년(1504)에 연산군이 원각사에 기생을 두고 연방원을 만들어 승려들을 내보냈다.
중종 대에 원각사가 철거되었다.
원각사 터는 한성부 청사로 활용되었으나 판윤 전림의 사망 이후 불길한 곳으로 여겨져 이전 청사로 되돌아갔다.
명종 대에 두 차례 화재를 겪고 절터의 흔적마저 사라졌다.
1897년 총세무사로 초빙된 Brown, J. McLeavy가 건의하여 원각사 십층석탑과 비만 남아 있던 원각사 터가 탑골공원으로 개발되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파고다 공원으로 불렸고 1992년에 옛 지명을 딴 탑골공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관련 문화재
참고자료
원각사지 십층석탑[圓覺寺址 十層石塔], 우리역사넷,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