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산업진흥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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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밤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12월 8일 (금) 11:4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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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경제 건설 운동이라고도 불린다. 신민회는 일제의 경제 침략을 군사 침략과 마찬가지로 극히 위험시하였다. 그들은 생존경쟁·우승열패의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낙오된 이유 중의 하나는 경제적 침체에 있다고 파악하고, 국민의 경제적 자립과 국가 부강의 실현이 곧 국권회복의 길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국민의 근로의식과 생산의욕을 고무시키고, 각종 산업의 생산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식산진흥론을 제시했으며, 일제의 경제 침탈에 대한 경각심과 근대적인 경제의식을 일깨워 민족산업의 발흥에 노력하였다.

애국계몽가들은 경제적 계몽운동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민족경제의 확립을 위한 실천운동을 전개하여, 근대적 회사를 설립하고 한국인 상공회의소[1]와 경제연구단체 및 실업장려단체들을 조직하여 경제적 자립과 국가의 부강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민족 산업의 진흥을 위해 우선 신민회 회원들이 출자해서 본보기 공장과 회사를 세우기로 하였다. 이를 실업가들에게 제시하고, 그들의 영업 방침을 지도함으로써 민족 산업자본의 발흥을 촉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신민회가 이러한 목적으로 설립한 대표적인 실업체는 평양자기제조주식회사·[협성동사]·상무동사·조선실업회사, 안악의 소방직공장·연초공장, 사리원의 모범농촌 등이다. 그러나 신민회의 민족산업진흥운동은 민족 자본이 취약한 상태에서 일제의 대독점자본의 압력을 받고 그에 대항해야 했으므로 교육구국운동과 같은 큰 성과는 내지 못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소규모의 민족자본으로 대규모의 일본 독점자본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국계몽가들이 일제의 경제침탈에 대한 경각심과 근대적 경제의식을 일깨워 주었고,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근대산업의 진흥과 민족산업자본의 발흥에 기여한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1. 현재 존재하는 대한상공회의소와는 다른 기관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884년 설립된 한성상업회의소가 이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