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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굥굥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12월 5일 (화) 05:5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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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사학자, 교육자. 본관은 충주(忠州).

초년기에는 중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 일원으로 활약했고, 이후 대한민국에서 중국사와 공산주의 연구에 평생을 바친 학자로 고려대학교의 영원한 총장이자 큰 스승으로 기억되는 사람이다.

정보

  • 출생: 1923년 8월 26일 평안북도 강계군 시중면 외시천동 254 (現 자강도 시중군 시중읍)
  • 사망:2011년 6월 7일 (향년 87세)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안암병
  • 본관:충주 김씨
  • 학력:신의주고등보통학교 (졸업)
    게이오기주쿠대학 문학부 (예과 / 중퇴)
    국립중앙대학 문학원 (사학 / 석사 중퇴)
    국립타이완대학 문학원 (사학 / 석사 수료)
  • 직업:독립운동가, 교육
  • 종교:무교
  • 가족:아내 민영주, 외동아들 김홍규
  • 묘소: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397호
  • 훈장:건국훈장 애국장
    국민훈장 무궁화장추서
    중국어언문화우의장

생애

일제강점기

1923년 평안북도 강계군 시중면 외시천동 254번지(현 자강도 시중군 시중읍)에서 직조공장을 경영한 대지주 김종걸(金宗傑)과 모친 홍종식 사이의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비교적 유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형제 많은 집의 막내아들이다 보니 부모님과 윗형제들로부터 많은 사랑과 귀여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선대는 조선 성종 때 이래로 평안북도 벽동군에 세거하였는데, 조부 김봉구(金鳳九) 대에 이르러 강계군으로 이주하여 살아왔다. 독립운동가였던 둘째 형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항일의식을 길렀다. 강계에서 소학교를 마친 뒤 1935년 신의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는데 압록강 건너 안동을 자주 왔다갔다 했다. 김준엽이 중국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 중 하나가 됐다. 파일:대학생김준엽.pngl200pxlcenterl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 유학시절


1944년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 문학부 예과 재학도중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되었다. 일본군으로 중국 장쑤성 쉬저우시에 배치된 뒤 단독으로 탈영, 같은 조선인 출신 학병 장준하와 합류하여 수천 리를 걸어(장정, 長征) 충칭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갔다. 이때가 일제가 패망하기 몇 달 전. 이후 이범석 장군의 부관이 되는 등 광복군에서 활약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또한 장준하 등과 더불어 미국 첩보국(OSS: CIA의 전신)의 특수훈련을 받으며 임정근 등과 함께 강원도반에 편성되어 강원도반 반장으로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였다. 파일:광복군김준엽.pngl200pxlcenterl광복군 시절의 모습


일부에선 실질적으로 독립운동에 기여한 게 거의 없다고 폄하 하지만, 일본군에서 탈출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 등 항일독립운동단체에 합류하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거는 일이다. 일본군에 걸리면 무조건 처형이고, 국민당이든 공산당이든 중국군에 잡혀도 일본 간첩으로 오인되면 죽은 목숨이다. 뭐 다행히 한복을 입으신 어머니와 찍은 사진 덕에 오해 없이 잘 끝났지만. 이 사람은 탈출하기 위해 징집 전 나침반을 마련하여 갈 정도로 광복군에 합류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던 인물이다.


그가 탈출한 츠카다 부대는 조선인 탈영병이 나오지 않은 아주 혹독한 부대였는데, 김준엽은 그 부대에서 최초로 탈출에 성공한 조선인 병사였다. 김준엽은 훗날 그의 회고록 "장정"에서 일본군 시절 작은 실수로 인해 상관으로부터 뺨을 맞은 후 상당한 모욕감을 느꼈다고 기술했다. 김준엽은 이 때가 태어나서 뺨을 처음으로 맞은 것이었다고 언급했다. 아마 일본군의 강제징용된 한국인 병사에 대한 차별적 대우와 가혹행위의 경험이 김준엽으로 하여금 츠카다 부대를 탈출하여 광복군에 합류하는 또 다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광복군 시절 이범석의 부관으로 있으면서 이범석의 비서였던 민영주 여사와 만나 결혼한다. 두 사람의 결혼식 주례는 이범석이 맡았다. 민영주의 집안은 독립운동가 명문인데, 아버지 민필호는 임시정부에서 김구의 판공실장(비서실장)을 지냈고, 외할아버지는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신규식이다. 또한 민영주의 오빠 민영수도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김준엽은 이런 처가의 이력을 긍지로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