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나로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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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ningkupid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12월 19일 (목) 15:00 판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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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브나로드 운동은 동아일보사가 일제의 식민통치에 저항하기 위해 일으킨 농촌계몽 운동이다. 동아일보사는 1931년부터 1934년까지 4회에 걸쳐 전국 규모의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제3회까지 이 운동을 ‘브나로드’로 부르다가 민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름이라 하여 제4회부터 '계몽운동'으로 바꾸었다.

배경

브나로드(В народ)는 19세기 후반 제정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의 계몽운동을 일컫는 말이다. 당시 제정 러시아의 지식인들은 농민과 노동자 속에서 생활하며 그들의 혁명 정신을 일깨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으며, ‘민중 속으로 들어가자(хождение в народ)'는 슬로건에서 브나로드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동아일보는 이러한 러시아의 브나로드 운동의 성격을 차용하여 농촌 문자 보급 운동을 전개하고자 했다. '

브나로드 운동은 일제 강점기 조선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기 위한 저항의 맥락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일본 제국은 한국어 사용을 제한하고 일본어를 학교 교육의 중심에 놓아 조선어를 말살하려 했다. 이에 동아일보는 창간 이후 우리말과 글을 지키는 데 앞장서며, 조선어연구회(후에 조선어학회) 활동을 지지하고 조선어 교육 확대와 교과서 국문화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특히,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맞아 ‘가갸날’ 제정을 기념하며 한글의 민족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한글을 통한 민족 정신의 통일을 주장했다.

1928년 동아일보는 창간 8주년을 맞아 문맹타파운동을 준비하며 한글운동의 실천적 주체로 나섰다. 이 운동은 인구의 약 80%에 달하는 문맹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일본 제국의 문화적 침투에 맞서는 탈식민 계몽운동이었다. 동아일보는 무료 한글 교육 자료를 제작·배포하고, 문맹퇴치 광고와 강연회를 준비하는 등 대규모 캠페인을 계획했으나, 조선총독부의 탄압으로 실행 직전에 금지되었다.

동아일보는 이에 굴하지 않고 1931년 여름 '학생 하기 브나로드'운동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농촌 계몽운동을 다시 계획하였다.

전개

1931년 동아일보는 ‘학생 하기 브나로드 운동’을 통해 농촌 계몽운동을 재개했다. 이 운동은 한글 강습을 중심으로 보건 위생과 학술 강연 등을 포함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중학생들은 한글과 기초 숫자 계산법 강습을, 전문학교 학생들은 보건과 학술 강연을 담당했으며, 학생 기자들은 활동을 기록하고 확산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동아일보는 한글과 숫자 계산법 학습을 위한 소책자를 제작해 무상 배포하였다. 운동 첫해에 자원봉사 학생 423명이 142개 지역에서 활동해 농민 약 1만 명이 한글과 숫자 계산법을 배웠다.

이후에도 브나로드 운동은 1934년까지, 국내에 최근 연구에 따르면 평안도 448건, 경기도 339건, 황해도 164건, 전라도 150건, 충청도 116건, 경상도 113건, 함경도 79건, 강원도 59건, 만주 53건, 일본 18건, 중국 5건 등, 총 1547건의 강습회가 개최되었으며, 여기에는 모두 4,116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된다. 4년 동안 강습회를 들은 인원은 88230명에 달하였다.

한계

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