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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ningkupid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10월 25일 (금) 14:08 판 (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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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개요

KIA 타이거즈는 KBO 리그 소속 프로야구단이다.

한 눈에 보기

KIA 타이거즈
창단 1982년 1월 30일[1]
모기업 기아
감독 41 이범호
주장 47 나성범
연고지 광주광역시
홈구장 무등 야구장 (1982~2013)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2014~)
KBO 한국시리즈 우승 1983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1991년, 1993년, 1996년, 1997년, 2009년, 2017년

상세

광주광역시를 연고지로 두고 있으며, 홈구장은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이다.

1982년 KBO리그 출범과 함께 창단된 원년 구단이다. 당시에는 해태 타이거즈였으며, 2001년에 현 모그룹인 현대-기아 자동차그룹이 인수하며 KIA 타이거즈로 팀명이 변경되었다. 구단 자체의 해체 후 재창단이 아닌 팀명 및 모기업 변경이기 때문에 해태-KIA 타이거즈가 같은 프랜차이즈를 공유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시리즈에 12번 진출해 11번 우승한 KBO리그 최다 우승팀이다.[2] 또한 한국시리즈 무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상징색은 빨간색. 보조색으로 감색, 검정색을 사용한다. 또한 전통적으로 노란색의 응원도구를 사용하여 이도 상징색처럼 여겨진다.[3] 상징 동물은 팀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호랑이이며, 호걸이, 호연이, 하랑이라는 호랑이 마스코트가 있다.

2024시즌

주요 선수

영구결번

KIA 타이거즈의 영구결번으로는 18번 선동열과 7번 이종범이 있다. KIA 타이거즈의 영결 기준은 타 구단에 비해서도 굉장히 높은 편인데, KIA 타이거즈 뿐만 아니라 KBO리그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레전드인 선동열과 이종범이 각각 투수와 타자 영구결번의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18 선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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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은 前 야구 선수로 KIA 타이거즈의 최초의 영구결번이다. 현역 시절 등번호는 18번, 포지션은 우완투수였다. 1985년 해태 타이거즈에서 데뷔해 1995년까지 10년간 KBO리그에서 활약했으며, 이후 1996년부터는 KBO 출신 최초로 일본 프로야구인 NPB리그의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해 1999년까지 활약하다가 은퇴했다.

선수로서 투수와 타자 모두 합쳐 KBO리그 역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다. KBO 리그에서 활약하는 10년동안 통산 367경기 146승 40패 132세이브 1.2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이 시기에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의 압도적인 에이스로 각광받으며 해태 타이거즈를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1년, 1993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통산 최저 평균자책점(1.20), 시즌 최저 평균자책점(0.78), KBO 유일 시즌 0점대 평균자책점 3회 이상[4] , 한 경기 최다 탈삼진(18K), 통산 최다 완봉(29회) 등의 주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선동열의 기록 중 극히 일부로, 기타 어마무시한 기록들이 끝도 없이 많다. 이런 기록들만큼 수상 기록도 화려하다. 평균자책점 1위 8번[5], 다승왕 4번[6], 승률왕 4번[7], 삼진왕 5번[8], 투수 골든글러브 6회 수상[9], KBO리그 MVP 3회 수상[10] 등의 주요 수상 기록이 있다.

이렇게 10년동안 KBO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기고 1996년에는 KBO출신 선수 최초로 NPB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하였다. 이는 이후 이종범, 이상훈, 구대성, 이승엽 등과 같은 KBO리그의 선수가 일본으로 진출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후 KBO리그 복귀 없이 NPB에서 은퇴하였다.

이러한 활약상에 힘입어 해태 타이거즈 구단은 선동열 은퇴 이후 등번호 18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였다.

7 이종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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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은 前 야구선수, 現 야구 코치로, KIA 타이거즈의 두 번째 영구결번이다. 현역 시절 등번호는 7번 포지션은 투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으로 한 번씩 출장해본 경험이 있는데, 선수시절 초중반에는 주로 유격수, 말년에는 우익수로 출장했다. 1993년 해태 타이거즈로 데뷔해 1997년까지 활약하다가 이후 1998년부터 2001년까지 NPB의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하였다. 이후 2001년 다시 KIA 타이거즈로 복귀하여 2012년 시범경기를 끝으로 은퇴했다.

타이거즈 프랜차이즈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사랑을 받는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4년간 해태 타이거즈에서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며 팀을 1993년, 1996년, 1997년 KBO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특히, 데뷔 시즌인 1993년에는 최연소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종범은 뛰어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공격, 수비, 주루를 모두 아우르는 전형적인 호타준족이자 5툴 플레이였다. 뛰어난 컨택 능력을 바탕으로 한 중장거리 타자였으며, 전형적인 홈런타자는 아니었지만 뛰어난 타격 생산력을 보이는 타자였다. 이종범이 각광받은 이유는 이런 공격력과 함께 겸비한 주루 능력 때문이었다. 압도적 주력과 독보적 주루 센스를 겸비한 간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주자로 불린다. 한 시즌 최다 도루(84개), 최다 연속 도루 (29회), 한 경기 최다 도루(6개)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또한 1997년에는 30-30 클럽을 달성했다. 수상 기록 또한 화려했다. 팀을 우승으로 이끈 1993년, 1996년, 1997년에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 포지션을 우익수로 변경한 2002년과 2003년에는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1994년에는 KBO리그 MVP를 수상했다.

이러한 활약상에 힘입어 KIA 타이거즈 구단은 이종범 은퇴 이후 등번호 7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였다. 이는 해태에서 기아로 모기업이 변경된 이후 첫 영구결번 지정이었다. 아직까지도 5툴 플레이어, 준족의 모습을

투수

양현종

정해영

타자

김도영

나성범

=

  1. 해태 타이거즈의 창단일로, 타이거즈 프랜차이즈의 시작일이다.
  2. 2024시즌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며, 문서 작성 당시에 한국시리즈가 진행 중이다.
  3. 노란색의 응원 막대 풍선이 통단무지처럼 보인다고 하여, 단무지라는 별명이 있다. 2024년에는 공식 응원도구가 노란색 종이막대로 변경되어 '호통이'라는 새 이름이 생겼다.
  4. 규정 이닝 평균자책점 0점대도 현재까지 KBO리그에서 선동열이 유일하다.
  5. 그 중에서 1985년~1991년 7년 연속 수상.
  6. 1989년~1991년 3년 연속
  7. 1989년~1991년 3년 연속
  8. 1988년~1991년 4년 연속
  9. 투수 부분 최다 수상
  10. 역대 최다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