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목차
정의
건축물 정보
부석사(浮石寺)
- 역사적 시대: 통일신라-신라 문무대왕 16년(676년)
삼국유사에는“의상이 태백산에 가서 조정의 뜻을 받들어 부석사를 세우고 대승교(대승불교)를 포교하니 영감이 많이 나타났다"고 전한다. 그리하여 신라 문무왕 16년(676) 2월에 의상대사가 문무왕이 뜻을 받들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
-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
- 특징: 의상이 왕명을 받아 세운 화엄종 사찰
- 의상이 화엄의 큰 가르침을 베풀던 곳으로, 의상을 “부석존자”라 하고, 그가 창시한 화엄종을 “부석종”이라 하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엄격한 양식을 가졌던 삼국시대의 절과 달리 자유로운 건물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고려와 조선 시대로 갈 수록 점점 심해진다. 회전문, 범종각, 법당, 안양문, 무량수전의 차례로 이루어지는 공간 구조는 화엄경의 질서와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화
《삼국유사》에 따르면, 의상이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의상이 신라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게 했고, 절터까지 따라와서 절을 세우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본래 이 절터에는 사교의 무리가 모여 있었는데, 의상이 이 곳에 절을 세우려고 하자 선묘가 무거운 바위를 사교의 무리들의 머리 위로 띄워 이곳에 절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돌을 ‘부석’이라 불렸으며 사찰 이름을 ‘부석사’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선묘 신룡은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으로 변신하여 무량수전 뜰아래 묻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무량수전 옆에 큰 바위가 있는데,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선묘가 띄웠던 바위이며 아직도 떠 있다고 한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