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혁거세신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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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7일 (수) 21:39 판
정의
신라의 건국시조인 박혁거세에 관한 신화이다.
역사
널리 알려진 박혁거세신화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려 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경상도 경주 조에 실린 신라의 신화는 『삼국사기』의 것을 인용하였는데, 박혁거세신화만이 아니라 박·석·김씨의 시조를 함께 기술하고 있고, 알영의 탄생담은 누락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신라의 건국신화가 한 곳에 기술된 것이 아니라, 양산나정·알영정·혁거세릉 항목에 나누어 실려 있다.
줄거리
진한(辰韓) 땅 6부의 조상들이 각각 자제들을 이끌고 알천(閼川) 언덕에 모여서, 덕(德)이 있는 자를 임금으로 삼아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하려고 하였다. 이에 그들이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내려다보니 양산 아래 나정 우물가에 번개 빛처럼 이상한 기운이 하늘에서 땅으로 비치고 있었다. 또 흰 말 한 마리가 꿇어 앉아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곳을 찾아가 보니 붉은 알 한 개가 있었고, 말이 사람을 보자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갔다. 알을 깨고 어린 남자아이를 얻었는데, 모두 놀라고 이상히 여겨 동천(東泉)에서 목욕을 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따라서 춤을 추었다. 이윽고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청명하였다. 이에 아이를 혁거세왕(赫居世王) 또는 불거내왕(弗矩內王)이라 이름 짓고, 위호(位號)를 거슬한(居瑟邯, 居西干)이라 하였다.
이때 사람들이 치하하면서, ‘이제 덕(德)이 있는 여인을 찾아 배필을 삼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날 사량리 알영정(閼英井) 가에 계룡(鷄龍)이 나타나, 왼쪽 갈비에서 여자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는 얼굴과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으나 입이 닭의 부리와 같았다. 이에 월성(月城) 북쪽에 있는 냇물에 목욕을 시켰더니, 그 부리가 빠졌다. 궁실을 남산 서쪽에 세우고, 이들 두 성스러운 아이를 모셔다 길렀다. 남자아이는 알에서 태어나고, 그 모양이 표주박[瓠]과 같다 하여 성씨를 박(朴)으로 삼았다. 또 여자아이는 태어난 우물 이름으로 이름을 삼았다. 두 성인이 열세 살이 된 오봉(五鳳, 한나라 선제 연호) 원년 갑자(甲子)에 둘을 각각 왕과 왕후로 삼았고, 나라 이름을 서라벌(徐羅伐, 徐伐, 斯羅, 斯盧)이라 하였다. 처음에 왕후가 계정(雞井)에서 탄생하였으므로 나라 이름을 계림국(鷄林國)이라 하였는데, 후세에 신라라 하였다.
왕은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이 되던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갔고, 그 뒤 7일 만에 죽은 몸이 땅에 흩어져 떨어졌다. 왕후 역시 왕을 따라 죽었다. 나라 사람들이 왕의 몸을 합쳐 장사지내려 하였다. 그런데 큰 뱀이 나타나 쫓아다니며 방해하여, 다섯 몸뚱이[五體]를 그대로 나누어 장사지내 다섯 능[五陵]을 만들었다. 그래서 이 능을 사릉(蛇陵)이라고도 한다.
변이
이 신화는 두 계통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하나는 보통 말하는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와 알영’에 관한 신화이고, 또 하나는 ‘여산신이 혁거세와 알영을 낳았다’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앞 신화를 보면, 『삼국사기』는 『삼국유사』에 비하여, 왕과 왕비의 탄생과 즉위 부분이 간단히 나온다. 이는 『삼국사기』가 유가적 합리주의 사관에 바탕을 두고 기술된 탓에, 신이한 내용이 빠졌기 때문이다. 특히 알영의 탄생은 혁거세왕 5년에 이루어진다. 한편, 지모신의 시조탄생담의 경우, 『삼국유사』 「감통」 선도성모수희불사 조에 실려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곧 “신모(神母)는 중국 제실(帝室)의 딸 사소로 선도산(仙桃山)에 건너와 지선(地仙)이 되었고, 이 산에 웅거하여 나라를 진호(鎭護)하였는데, 그 성모(聖母)가 진한(辰韓)에 와서 혁거세와 알영 두 성군(聖君)을 낳아 동국의 첫 왕이 되게 하였다.”라는 것이다.
분석
혁거세신화에서 다음 몇 가지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한국 고대 건국신화와 마찬가지로 ‘천신이 하강하여 건국하였다.’라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따라서 혁거세도 하늘에서 하강한 ‘천신이며 태양신 성격’을 지닌다. 가령 하늘에서 내리뻗은 번개불 같은 이상한 기운, 백마, 자줏빛, 난생, 시조의 몸에서 나는 광채, 천지 진동과 일월의 청명 등에서 천신적 면모를 찾을 수 있고, 난생의 ‘알’은 천신적 성격을 지닌 주몽․수로의 ‘알’과 같이 태양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은 신라 왕권을 신성화하는 데 큰 구실을 한다. 이는 혁거세왕이라는 이름 자체가 ‘불구내왕(弗矩內王)’, 곧 밝은 왕으로서 ‘세상을 밝게 다스린다[光明理世]’는 의미를 지닌 것을 보아 그러하다. 이것은 고조선의 단군신화에 보이는 ‘홍익인간’의 이념과 상통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둘째는 혁거세는 고구려의 주몽처럼 모친의 몸을 통한 난생이 아니고, 백마라는 ‘하강한 운반체’를 통해 난생함으로써 고조선, 고구려의 건국신화에서 보이는 ‘부모의 신성혼에 의한 시조의 탄생’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신화에는 시조의 탄생과 동시에 왕비 알영의 탄생이 설정되어, ‘남녀의 신성혼과 등극’이 중시되고 있다. 이러한 남녀의 상호 대등한 관계는 환웅과 웅녀, 해모수와 하백녀 유화가 천상적 남성의 우월성을 바탕으로 부부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과 다르다. 이는 곧 혁거세 집단이 경주 지역에 이주한 뒤, 알영 집단과 혼인 동맹을 통하여 세력을 확장하고 왕위에 올랐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이 신화에서 6촌의 무리가 하늘에서 내려온 혁거세를 받들어 왕으로 삼는 것은, 씨족사회가 연합하여 하나의 왕국을 형성하는 역사 사실을 반영한다.
셋째는 혁거세의 강림 장소가 ‘산’이 아닌 ‘우물[나정]’이며, 알영 비의 탄생지 역시 ‘우물[알영정]’이라는 것은, 신라 초기부터 우물이 성역이었음을 뜻한다. 우물은 농경사회의 정착민에게 중요한데, 현재 마을 굿에서 당산나무와 우물은 제의 대상이 된다.
넷째는 혁거세와 알영이 각각 왕과 왕비가 되는 조건으로 ‘덕(德)’을 강조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이는 통치자의 신이한 능력보다는 도덕적인 우월함이 새롭게 중시되는 인간 세상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다섯째는 알영이 탄생한 뒤 ‘입술이 닭의 부리처럼 길었다가 뒤늦게 떨어진다.’는 모티프는, 주몽신화에서 ‘유화가 입술이 길어 세 번 자른 뒤 말할 수 있었다.’라는 내용과 유사하다. 이는 ‘여성의 입사식(入社式)’ 절차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여섯째는 혁거세가 승천한 뒤, 다시 시신(屍身)이 땅에 흩어지고, 왕비와의 합장을 뱀의 방해로 하지 못하자 다섯 능으로 나누어 매장하는 것은 한국 건국신화에 유례가 드문 내용이다. 이에 대해 대부분 ‘풍요를 위한 농경의례의 하나’로 설명하지만, 더러는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성무식(成巫式)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시체 분리의 모티프’와 대응시켜 논의하기도 한다.
모티프
의의와 평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혁거세신화>는 한국 고대 건국신화의 전통을 잘 따르고 있으면서도, ‘하강한 운반체를 통한 난생과 부부 신성혼’을 내용의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북방 지역 건국신화와 다른 면을 보여 준다. 이러한 면은 같은 남방 지역의 건국신화인 금관가야 김수로신화에서도 나타난다. 아울러 ‘선도산 여산신이 신라 건국시조인 혁거세와 알영을 낳았다.’라는 내용의 신화가 전승되고 있는데, 이는 지배층이 천신계 건국신화를 전승하는 것과 달리 토착 집단에서는 산신숭배에 따른 지모신 계통의 신화를 전승하고 있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