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척전ᐧ༚̮ᐧ"의 두 판 사이의 차이
| 41번째 줄: | 41번째 줄: | ||
====임진왜란==== | ====임진왜란==== | ||
| − | [[파일:임진왜란|섬네일|왼쪽]] | + | [[파일:임진왜란|섬네일|왼쪽]]<ref> 유용하,「임진왜란 당시 조선군 ‘MOAB’(모든폭탄의 어머니) 사용했다」, 『서울신문』,2019, 11, 19, https://www.seoul.co.kr/news/society/science-news/2019/11/19/20191119500075, 2025, 6, 24, 접속.</ref> |
2025년 6월 24일 (화) 03:38 판
작가
조위한
| 자 | 지세 |
| 호 | 현곡 |
| 출생 | 1567(명종 22년) |
| 사망 | 1649(인조 27년) |
| 본관 | 한양 |
| 관직 | 공조참판, 지중추부사 |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종군하였고, 1609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주부, 감찰 등 관직 생활을 하다가 계축옥사에 연류되어 구금되었다.
이후 인조반정으로 재등용되었다.
1624년 이괄의 난 토벌에 참여하여 수도를 지켰다.
정묘, 병자호란 때에도 출전하였으며, 난이 끝난 뒤 벼슬길에서 물러났지만 다시 등용되었다.
동부승지, 직제학을 지내고 공조참판까지 벼슬이 올랐다.
80세에 자헌대부에 오르고, 지중추부사를 지내었다.[1]
사건
임진왜란
임진왜란은 일본이 조선과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동안 싸운 장기 전투이다.
조선은 오랫동안 평화가 유지되었기에 임진왜란 전쟁은 조선 백성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이후 인구 감소, 민생 불안정, 토지 황폐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였고 살기 힘들어졌다.
또한 전쟁이 일어나면서 서로 각자도생을 하며 뿔뿔이 흩어졌고 이에 따라 가족을 생사를 알 수 없는 사람 또한 있었다.
최척전은 임진왜란 등 전쟁을 배경으로 흩어진 가족들의 이별과 재회를 생생히 그려내었다.
심하 전투
심하전투는 1619년 명과 조선의 연합군이 누르하치의 후금군에게 패한 사건을 말한다.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의 국력이 쇠약해진 틈을 타 북방의 여진족은 세력을 규합하여 국가를 세울 정도가 되었다.
누르하치가 여진 세력을 통일하여 후금을 세우고, 독립국을 선포하였다.
누르하치는 명에게 일곱 가지 큰 원한이라는 칠종뇌한을 내세워 명에게 선전포고를 하였고 후금과 명은 전쟁을 시작하였다.
명나라는 재조지은이라는 명분으로 조선에게 원군 파병을 요청하였다.
조선 또한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도와준 은혜를 생각하여 당연히 파병을 하려고 하였다.
단, 임금인 광해군이 당시 정세가 명나라는 쇠약해지고 청나라가 득세하고 있는 판이라, 강홍립 장군을 파병하여 상황을 보고 적절하게 대처하도록 지시하였다.
심하전투에서 청나라의 승리는 우세했고, 이후 청나라가 항복을 종용하자 강홍립은 항복하였다.
파견된 조선군인들은 모두 청나라의 포로가 되었다.
내용
남원에 사는 최척이 옥영(玉英)을 사랑하여 약혼을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최척이 징발되어 전쟁에 나가게 된다.
이에 옥영의 부모는 이웃의 양생을 사위로 맞이하려고 하였으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최척이 돌아와 옥영과 혼인을 하고 첫째 아들 몽석을 낳는다.
정유재란이 발발하고 남원이 함락되었다.
옥영은 왜병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최척은 명장인 여유문을 따라 중국으로 갔으며 아들인 몽석 또한 흩어져 자취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옥영은 남장을 하고 여러 지역을 떠돌다 안남(베트남)으로 오게 되었다.
최척 또한 상선을 타고 안남(베트남)에 왔고, 최척과 옥영은 기적적으로 만나게 된다.
이들은 각자의 동료와 이별을 고한 뒤, 중국으로 건너가 아들 몽선을 낳는다.
몽선이 장성하여 임진왜란 때 조선에 출전한 진위경의 딸 홍도와 결혼한다.
최척은 사르후 전투에서 명군으로 출전하였다가 청군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 갖힌다.
그러다 우연히 조선에서 강홍립을 따라 파병되었다가 항복하여 포로가 된 첫째 아들 몽석과 극적으로 만나게 된다.
최척과 몽석은 수용소를 탈출하여 고향으로 향했는데, 중간에 최척이 심하게 아팠다.
같은 배를 탄 사람 중 의술에 능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도움으로 최척이 씻은 듯이 낫게 되었다.
몽석과 최척은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최척의 이웃이자 둘째 아들 몽선의 장인, 진위경인 것을 알게 된다.
이후 최척과 몽석, 진위경은 무사히 집에 도착했고 헤어진 가족들은 모두 재회를 하게 된다.
의의
실제 일어난 사건을 기반으로 하여, 가족의 이별과 재회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최척전을 기점으로 하여 이전 시기 고전 소설에서 도외시되었던 역사성과 지리 감각이 사실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포로가 된 주인공의 행적을 중심으로 하는 '피로 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가능성을 열었다. [3]
전쟁으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진 백성들의 마음을 대변하여 가족 회복에 대한 이상이 잘 드러나 있다.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위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2465, 2025, 6, 24.
- ↑ 유용하,「임진왜란 당시 조선군 ‘MOAB’(모든폭탄의 어머니) 사용했다」, 『서울신문』,2019, 11, 19, https://www.seoul.co.kr/news/society/science-news/2019/11/19/20191119500075, 2025, 6, 24, 접속.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최척전」,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7689, 2025,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