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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의 건설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의 일이다. 당시 정부는 제 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기간 중 경제개발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송에 있어서의 개선이 필수적임을 인식하고 1967년 8월 서울에서 인천 등지의 고속도로 건설계획을 밝힌다. 이에 따라 경인, 경부, 울산, 호남고속도로가 연차적으로 착공되었다.<ref>"고속도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23066&cid=46632&categoryId=46632</ref> | 고속도로의 건설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의 일이다. 당시 정부는 제 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기간 중 경제개발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송에 있어서의 개선이 필수적임을 인식하고 1967년 8월 서울에서 인천 등지의 고속도로 건설계획을 밝힌다. 이에 따라 경인, 경부, 울산, 호남고속도로가 연차적으로 착공되었다.<ref>"고속도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23066&cid=46632&categoryId=46632</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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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제 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통상적으로 대한민국 산업화의 시작으로 평가된다. 정부 주도 하에 이루어진 산업화는 1960년대 초기에는 생활 필수품의 공급과 국산화 및 수출 산업화에 유리한 경공업 분야를 중심으로 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1970년대 중후반부터는 부가 가치가 높은 중화학 공업 분야로 그 축을 전환했다. 초기 산업화로 비약적 성장을 이룬 이후 두 차례의 외환 위기를 겪었으나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공적으로 대규모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등 한국의 산업화는 매우 빠른 기간 안에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 바로 이 제 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통상적으로 대한민국 산업화의 시작으로 평가된다. 정부 주도 하에 이루어진 산업화는 1960년대 초기에는 생활 필수품의 공급과 국산화 및 수출 산업화에 유리한 경공업 분야를 중심으로 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1970년대 중후반부터는 부가 가치가 높은 중화학 공업 분야로 그 축을 전환했다. 초기 산업화로 비약적 성장을 이룬 이후 두 차례의 외환 위기를 겪었으나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공적으로 대규모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등 한국의 산업화는 매우 빠른 기간 안에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 ||
| − | 그러나 단기간에 압축적인 산업화를 이루어 낸 결과, 부작용이 따르기도 했다. 사회적으로는 급속한 소득 증가와 더불어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었고, 도시화율이 빠르게 높아지며 주택난과 생활 인프라 부족, 환경오염으로 | + | 그러나 단기간에 압축적인 산업화를 이루어 낸 결과, 부작용이 따르기도 했다. 사회적으로는 급속한 소득 증가와 더불어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었고, 도시화율이 빠르게 높아지며 주택난과 생활 인프라 부족, 환경오염으로 인한 삶의 질 저하와 같은 현상들이 초래되었다. <ref>"산업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295#section-2</ref> |
===특징=== | ===특징=== | ||
2025년 6월 23일 (월) 19:09 판
작품 개요
| 항목 | 내용 |
|---|---|
| 제목 | 상행 |
| 작가 | 김광규 |
| 발표 연도 | 1981년 |
| 갈래 | 서정 갈래 |
| 시대적 배경 |
전문
가을 연기 자욱한 저녁 들판으로 상행 열차를 타고 평택을 지나갈 때 흔들리는 차창에서 너는 문득 낯선 얼굴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너의 모습이라고 생각지 말아 다오. 오징어를 씹으며 화투판을 벌이는 낯익은 얼굴들이 네 곁에 있지 않느냐. 황혼 속에 고함치는 원색의 지붕들과 잠자리처럼 파들거리는 TV 안테나들 흥미 있는 주간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다오. 농약으로 질식한 풀벌레의 울음 같은 심야 방송이 잠든 뒤의 전파 소리 같은 듣기 힘든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아 다오. 확성기마다 울려 나오는 힘찬 노래와 고속 도로를 달려가는 자동차 소리는 얼마나 경쾌하냐. 예부터 인생은 여행에 비유되었으니 맥주나 콜라를 마시며 즐거운 여행을 해 다오. 되도록 생각을 하지 말아 다오. 놀라울 때는 다만 '아!'라고 말해 다오. 보다 긴 말을 하고 싶으면 침묵해 다오. 침묵이 어색할 때는 오랫동안 가문 날씨에 관하여 아르헨티나의 축구 경기에 관하여 성장하는 GNP와 증권 시세에 관하여 이야기해 다오. 너를 위하여 그리고 나를 위하여
주요 특징
배경
이 작품에서 살펴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 두 가지는 첫째, 산업화이며 둘째, 독재이다.
"농약으로 질식한 풀벌레의 울음"이라고 하는 구절에서 특히 두드러지듯이 시인은 농촌의 산업화가 농경사회의 질서를 해치는 현실을 비판하고자 했다. 변화하고 해체되는 농촌의 풍경은 "확성기마다 울려나오는 힘찬 노래와/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자동차 소리"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는 중앙집권적으로 진행된 산업화 및 근대화 하에 이루어진 고속도로의 개통 등이 농촌사회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시사한다.
고속도로의 건설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의 일이다. 당시 정부는 제 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기간 중 경제개발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송에 있어서의 개선이 필수적임을 인식하고 1967년 8월 서울에서 인천 등지의 고속도로 건설계획을 밝힌다. 이에 따라 경인, 경부, 울산, 호남고속도로가 연차적으로 착공되었다.[1]
바로 이 제 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통상적으로 대한민국 산업화의 시작으로 평가된다. 정부 주도 하에 이루어진 산업화는 1960년대 초기에는 생활 필수품의 공급과 국산화 및 수출 산업화에 유리한 경공업 분야를 중심으로 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1970년대 중후반부터는 부가 가치가 높은 중화학 공업 분야로 그 축을 전환했다. 초기 산업화로 비약적 성장을 이룬 이후 두 차례의 외환 위기를 겪었으나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공적으로 대규모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등 한국의 산업화는 매우 빠른 기간 안에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단기간에 압축적인 산업화를 이루어 낸 결과, 부작용이 따르기도 했다. 사회적으로는 급속한 소득 증가와 더불어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었고, 도시화율이 빠르게 높아지며 주택난과 생활 인프라 부족, 환경오염으로 인한 삶의 질 저하와 같은 현상들이 초래되었다. [2]
특징
작가
| 이름 | 김광규 (金光圭) |
|---|---|
| 출생 | 1941년 1월 7일 |
| 출생지 | 경성부 종로구 통인정 (現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인동) |
| 활동 시기 | 1970년대 (현대) |
| 문학 사조 | |
| 문학적 특징 | |
| 대표작 | 〈상행>, <묘비> |
- ↑ "고속도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23066&cid=46632&categoryId=46632
- ↑ "산업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295#section-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