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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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구조 || 성리학적 질서 강화, 신분제 고착, 여성 지위 하락, 지방 문화 발달 | | 사회 구조 || 성리학적 질서 강화, 신분제 고착, 여성 지위 하락, 지방 문화 발달 | ||
2025년 6월 22일 (일) 00:45 판
조선 중기 시대상
| 역사적 사건 | 임진왜란(1592), 정유재란(1597) |
| 사회 구조 | 성리학적 질서 강화, 신분제 고착, 여성 지위 하락, 지방 문화 발달 |
| 사상 변화 | 성리학 중심, 예학 발달, 불교·도교는 배척되면서도 사상적으로 잔존 |
정치·사회적 배경
- 사림의 중앙 정계 진출로 성리학 중심의 유교 정치 확립 - 무오사화, 갑자사화, 을사사화 등 일련의 사화로 훈구파 축출 - 동인과 서인으로 분열된 붕당 정치 시작 - 왕권 약화와 신권 강화의 갈등 지속 -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국가적 대위기 경험 - 전쟁 이후 백성의 피폐, 사회질서의 해체, 경제 기반 붕괴
문학의 흐름
조선 중기는 중세적인 미 의식이 고도로 발전함과 동시에 개개인의 개성에 집중하는 근대적인 사상이 싹트기 시작하는 때였다. 조선을 크게 바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발발을 기점으로 큰 변화가 나타난다. 16세기 국문 시가 문학은 사대부 중심의 시가 창작이 이루어졌다. 보다 세련된 형식과 다양한 깊이를 가진 내용의 시가 문학이 발달했다. 이들은 주로 강호 속에서 마음을 가다듬는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거나, 유가적인 사상을 피지배계급에게 교훈으로써 널리 알리고자 내용에 담았다. 또한, 당시의 사람들은 시가에 있어 표현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성정을 표현하고 노래로 불러야 한다고 믿었다. 유학적 이념과 이념적인 도덕에 충실한, 도학적 자아수양을 주제로 노래했고 정치 현실과 이상 간의 갈등을 자주 나타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친 17세기에 들어서며 16세기에 크게 유행했던 강호시조가 더욱 고도화되었다. 이는 작품 하나가 온전히 완결된 형태를 띄고 있는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서 잘 드러난다. 17세기 후반에는 시조의 주된 작가층이 사대부에서 중인과 평민에게 까지 확대된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즐기는 문화에서 보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까지 향유의 가능성이 확대된 것이다. 이에 따라 주제가 다각화되며 단어들이 한 작품 안에 많아졌고 산문화와 장편화가 되기 시작했다. 그 내용 역시 다각화가 이루어졌는데, 전쟁 경험을 담은 내용이 현저히 증가했다.
| 문학 장르 | 특징 |
|---|---|
| 시가 | 연군가사와 기행가사의 발달. |
| 소설 | 정형시의 계승. 사설시조 등장으로 감정 표현 폭 확대 |
대표 작가 및 작품
| 작가 | 대표 작품 |
|---|---|
| 윤선도 | 어부사시사 |
| 박인로 | 태평사, 선상탄 |
| 박지원 | 양반전 |
| 김수장 | 해동가요(海東歌謠) |
임진왜란 이후의 문학 변화
전쟁을 겪은 작가들의 자아 성찰 및 세태 풍자 강화
이상 세계(도교적 세계, 이상 정국)에 대한 탐색
유교 이념의 실천 불가능성에 대한 회의
민간에서 구전되는 설화·야담 문학 확산
문학사적 의의
조선 중기는 조선 전기의 형식적, 이념적 틀 위에서 실질적인 문학 전통이 자리 잡은 시기
문학을 통한 유학적 인간상 구현과 정치적 도덕의 실현을 꾀함
이후 조선 후기 실학 문학과 현실 비판 문학의 기반 마련
참고문헌 및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 중기 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