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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크기가 작은 반가사유상은 표현이 세밀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은 균형감이 매우 뛰어나며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압권이다. | 일반적으로 크기가 작은 반가사유상은 표현이 세밀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은 균형감이 매우 뛰어나며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압권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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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일 (일) 00:32 판
기본정보
환수경로 | 미환수 ( 일본 ) |
시기 | 백제 |
형태 | 금동불상 |
현소장처 | 도쿄국립박물관 |
금동반가사유상은 전세계 약 70여점 정도가 남아있어 높은 희귀성을 가진 불상이다.
기본정보
형태
공주에서 출토된 금동반가사유상은 높이 16.cm의 작은 불상이다.
보관의 중앙에 반 타원형을 중심으로 상부와 좌우에는 꽃잎 장식이 보이며 2줄의 보관대(寶冠帶)를 뒷부분의 양쪽에서 돌기로 마무리하였다.
옆머리에서 내려진 보발(寶髮)은 어깨에서 원 장식으로 묶은 뒤 세 가닥으로 나뉘어 팔 윗부분을 덮고 있다. 이러한 보관 형식은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의 것과 유사하다.
재질
반가사유상 본체의 청동성분은 모두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다. 납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것은 고대 한국 금동불상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반가사유상의 가치
공주에서 출토된 반가사유상은 작은 크기의 불상이지만, 조형미가 매우 사실적이며 빼어나다.
일반적으로 크기가 작은 반가사유상은 표현이 세밀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은 균형감이 매우 뛰어나며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압권이다.
유출 과정
도쿄국립박물관의 전시 설명에는 ‘한국 충남 공주의 사지 석탑 내에서 발견됐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일본 고고학계에서는 충청남도 공주 부근 산성의 탑 가운데에서 발견됐다고 기록되어 있다.
소장자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발간한 〈오구라 컬렉션-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따르면 조선총독부가 한국문화재의 대표작들을 집대성해 편찬한 도록인 〈조선고적도보〉에도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는 경성공소원 판사 미야케 조사쿠(三宅長策, 1868~1969)의 소장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1941년 도쿄에서 열린 소장품 전시 목록에는 오구라의 컬렉션으로 포함된 것을 보면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그 전에 구매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