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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조도는 홀로 낚시하는 그림이라는 제목의 그림으로 거룻배를 띄어 놓고 홀로 낚시하고 있는 고결한 선비를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 | 독조도는 홀로 낚시하는 그림이라는 제목의 그림으로 거룻배를 띄어 놓고 홀로 낚시하고 있는 고결한 선비를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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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의 말라죽은 교목 두 그루를 중심으로 갈대 숲, 강 위의 배와 배 위에서 낚시를 즐기는 인물 그리고 모래언덕 등 강가의 풍경을 화려하게 담아냈다. | 강변의 말라죽은 교목 두 그루를 중심으로 갈대 숲, 강 위의 배와 배 위에서 낚시를 즐기는 인물 그리고 모래언덕 등 강가의 풍경을 화려하게 담아냈다. |
2024년 11월 30일 (토) 22:26 판
기본정보
환수경로 | 미환수 (일본 ) |
시기 | 조선, 15세기 후반 |
형태 | 종이에 수묵 / 전체 86 x 132 cm |
현소장처 | 일본 도쿄박물관 |
문화유산 소개
독조도
독조도는 홀로 낚시하는 그림이라는 제목의 그림으로 거룻배를 띄어 놓고 홀로 낚시하고 있는 고결한 선비를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
강변의 말라죽은 교목 두 그루를 중심으로 갈대 숲, 강 위의 배와 배 위에서 낚시를 즐기는 인물 그리고 모래언덕 등 강가의 풍경을 화려하게 담아냈다.
강가 갈대 밭 옆에 정박한 조각배 위에 낚싯대를 걷어 올린 채 노에 기대어 있는 선비는 쌀쌀한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봄의 스산한 분위기 속에서 강 너머를 응시하며 상념에 잠겨있다.
이 작품은 은유자적하는 선비의 은일사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능란한 수묵을 구사한 조선 초기 회화의 돋보이는 수작이다. 먹의 농담 변화와 번지는 효과를 이요한 나무의 표현과 갈대 숲과 강변의 모래언덕 그리고 인물 묘사 등 빠른 붓질의 대담한 수법 그리고 전체적으로 진한 수묵의 과량감은 '선종화적 표현'을 연상시킨다.
독조도를 그린 인물, 강희맹
강희맹은 조선 초기의 선비화가로 세종에서 성종때까지 6대에 걸쳐 관직생활을 한 조선초기 문인이자 문장가이며 화가였다.
그는 세종 29년(1447)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좌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였으며 나랏일에서는 맡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면서도 겸손하여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사대부로서의 관인적 취향과 섬세한 감각을 가진 문인이면서도 농촌 사회에 전승되고 있는 민요와 설화에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 관인문학의 틀을 스스로 깨뜨려 버리는 면이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소나무와 대나무 및 산수화를 잘 그렸는데 현존하는 그의 그림은 '독조도'가 유일하다.
환수시도
2009년 경기도 시흥시에 위치한 시흥문화원에 의해 '독조도 반환 운동'이 진행되었다.
강희맹은 시흥에 연고를 둔 인물이다. 이에 지방 단위의 단체인 시흥문화원에서 독조도 반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2009년 기관 자체 예산을 통해 반환 운동을 전개하였다.
2009년 8월 10일부터 12월까지의 약 4개월 간의 서명운동을 펼쳤고 시민들의 호응을 통해 반환 필요성을 알리고 일본 도쿄 박물관에 항의하였다. 1천여 명의 서명을 받으며 시민들과 함께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독조도는 반환되지 못했다.
초반에는 시흥문화원 자체 예산으로 반환 운동을 펼쳤지만 지속적인 자금이나 정부 지원이 없기 때문에 시민들이 환수 활동을 이어나가기 힘들었다. 시민들은 문화재청 산하기관인 국외소재문화재 재단 공모사업을 통해 예산을 확보하고 있는데 이에 떨어지면 사실상 사업을 유지해 나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2016년 도내 국외소재 문화재 환수 활동기관을 지원하는 내용의 조례를 제정했지만 실질적인 예산 지원은 현재 없는 상황이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성과가 없기 때문에 예산을 삭감해야하고 약탈 문화재 환수 가능성을 높게 책정할 수 없어 예산을 세울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