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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27살에 <노동의 새벽> 첫 시집을 발간했으나, 금서로 지정되면서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렸다. '''노동자가 노동자의 입장에서 쓴''' 최초의 시집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 1984년 27살에 <노동의 새벽> 첫 시집을 발간했으나, 금서로 지정되면서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렸다. '''노동자가 노동자의 입장에서 쓴''' 최초의 시집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 ||
+ | ==그 이후=== | ||
+ | 1991년 사형을 구형받고 환히 웃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가 무기수로 감옥 독방에 갇혀서도 독서와 집필을 이어갔다. <br/> | ||
+ | 복역 7년 6개월만에 석방된 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br/> | ||
+ | 그후 20여년간 국경 너머 가난과 분쟁의 땅에서 평화활동을 펼치며 현장의 진실을 기록해왔다. |
2023년 12월 12일 (화) 12:51 판
박노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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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
출생 | 1957년 |
직업 | 시인, 사진작가, 평화운동가 |
장르 | 시문학, 수필, 사진예술 |
박노해
박노해의 본명은 박기평, 1957년 대한민국 전라남도 함평군 출생.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노동운동가, 사진작가이다.
박노해는 16세에 서울로 올라가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야간 수업을 들었다.
건설, 섬유, 화학, 금속, 물류 등의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노동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노동의 새벽
1984년 27살에 <노동의 새벽> 첫 시집을 발간했으나, 금서로 지정되면서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렸다. 노동자가 노동자의 입장에서 쓴 최초의 시집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이후=
1991년 사형을 구형받고 환히 웃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가 무기수로 감옥 독방에 갇혀서도 독서와 집필을 이어갔다.
복역 7년 6개월만에 석방된 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그후 20여년간 국경 너머 가난과 분쟁의 땅에서 평화활동을 펼치며 현장의 진실을 기록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