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고문치사사건"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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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작은 새여''<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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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2일 (화) 10:49 기준 최신판

개요

종철아! 잘 가그래이…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가 화장한 박종철의 유해를 임진강에 뿌리며 한 말. 이후 장례식장과 시민들이 박종철을 추모할 때 쓰는 구호가 되었다.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 전두환정권 말기인 1987년 1월 14일, 경찰은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 박종철을 불법 체포하여 고문하다가 사망케 했다. 이 사건은 공안당국의 조직적인 은폐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 진상이 폭로되어 1987년 6월항쟁의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전개

전두환정권의 탄압과 그에 대한 저항은 1980년대 중·후반에 더해가고 있었다. 경찰은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 관련 수배자 박종운의 소재 파악을 위해 그 후배인 박종철을 불법으로 체포했다. 경찰은 박종철에게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가했다. 박종철은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했다. 같은 달 15일강민창 치안본부장은 단순 쇼크사인 것처럼 발표했다.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 박종철군의 친구의 소재를 묻던 중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 부속 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하였다”고 공식 발표했다. 부검의(剖檢醫)의 증언과 언론 보도 등으로 의혹이 제기되자 사건발생 5일 만인 19일에 물고문 사실을 공식 시인했다. 수사경관 조한경과 강진규 등 2명을 구속했다. 정부는 내무부장관 김종호와 치안본부장 강민창의 전격 해임과 고문근절 대책 수립 등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1987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7주기 추모미사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김승훈 신부는 박종철 고문치사와 관련된 경찰의 은폐 조작을 폭로했다.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 등 대공간부 3명이 이 사건을 축소 조작하였고, 고문가담 경관이 2명이 아니라 5명이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안기부, 법무부, 내무부, 검찰, 청와대 비서실 및 이들 기관의 기관장이 참여하는 관계기관대책회의가 은폐 조작에 조직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의의

박종철.jpg

박종철 고문치사와 은폐 조작사건은 전두환정권의 정당성에 큰 타격을 주었고 정권 규탄 시위를 촉발했다. 이 사건은 1987년 6월항쟁의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여 민주화운동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추모

서울대학교 인문대학과 중앙도서관 사이에는 박종철이 당했던 고문을 형상화한 '박종철 열사 기념비'와 흉상이 세워져 있다. 모교인 혜광고등학교에도 2002년에 펜촉 모양의 기념비가 신관과 본관 사이에 세워졌다. 박종철 문서의 관련 기사를 참조해 보면 알겠지만 이 기념비가 세워지는 데도 동기회의 많은 노력이 있었다. 사건 초창기에는 박종철 이름만 꺼내도 교사들에게 무자비한 구타를 당하기 일쑤였다고. 겨우 이름을 말할 수 있게 된 것도 2002년경이라 그때야 기념비를 세울 수 있게 된 것인데 초기안은 흉상이었으나 학교의 반대로 인해 기념비 정도로 타협한 거라고 한다. 2018년 1월 13일에는 31주기를 하루 앞두고 그가 지냈던 하숙집 골목 앞 길이 '박종철 거리'로 제정되었다. 녹두거리 대학5길에 박종철 거리임을 알리는 동판이 있으며 인근 도덕소공원 담장에 그의 모습을 그린 벽화가 있다.

2020년 6월 민주항쟁 33주년을 맞아 서울특별시 관악구 박종철 거리에 생전 박종철의 모습을 본뜬 동상과 벤치가 마련됐다. 벤치에는 1986년 7월, 박종철이 구속 상태에서 썼던 편지의 한 구절이 오롯이 새겨졌다. 이 벤치는 서울대 동문들의 모금과 관악구의 지원으로 서울대 미술대학에서 제작했다. 박종철 거리 일대에는 박종철을 기리는 기념관과 기념 공원도 조성될 예정으로 전해졌다.

아래의 시는 정호승 시인의 '부치지 않은 편지'로, 박종철에 대한 추모의 의미로 제작되었다.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 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