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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활약한 [[독립운동]]가로, 호는 석정(石正)이다. 약산 김원봉이 조직한 [[의열단]]의 열렬한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br>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독립운동]]가로, 호는 석정(石正)이다. 약산 김원봉이 조직한 [[의열단]]의 열렬한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br>

2023년 12월 10일 (일) 02:44 기준 최신판

개요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독립운동가로, 호는 석정(石正)이다. 약산 김원봉이 조직한 의열단의 열렬한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윤세주.jpg


생애

1900년 6월 24일 경상남도 밀양 출신으로, 의열단을 조직한 김원봉과 동향이다. 같은 마을 출신이었던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었고, 평생 독립운동을 함께한 동지가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강한 민족의식을 드러낸 윤세주는 1919년 밀양 3/13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하지만 시위와 관련된 일제의 강력한 진압으로 인해 체포되어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만주의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 후에 다시 항일무장투쟁을 위해 귀국하지만, 밀고자에 의해 일제에 체포되어 7년형을 선고받는다. 이후 출옥하여 다시 중국으로 망명하는데, 이 때 이육사와 동행하게 된다. 그 후에도 이육사와 함께 조선혁명군사정치학교에 입교하여 항일 무장투쟁에 앞장서다 1942년 중국 장자령 계곡에서 전사하였다.

이육사와의 관계

이육사와는 오랜 기간 항일 무장투쟁을 함께한 동지였다. 의열단 활동을 함께 했었고, 7년간의 옥살이 후에도 이육사와 함께 조선혁명군사정치학교의 생도로 활동하였다. 이육사 시인은 생전 윤세주를 많이 따랐다고 전해진다. 그는 자신의 수필 '연인기'에서도 윤세주를 향한 그리움을 드러냈고,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청포도'는 자신이 바라는 조국의 미래의 선봉장을 윤세주로 생각하고 지은 시라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