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대웅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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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통도사 금강계단]]과 함께 국보로 지정되었다. | *1997년 [[통도사 금강계단]]과 함께 국보로 지정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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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梁山 通度寺 大雄殿 및 金剛戒壇),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9274]<br/> |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梁山 通度寺 大雄殿 및 金剛戒壇),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9274]<br/> |
2023년 12월 10일 (일) 02:14 판
특징
- 정면 3칸, 측면 5칸의 규모이다.
- 보편적인 전각과 달리 장방형 구조로 정면 너비가 측면에 비해 좁다.
- 전각 내에 부처를 모시지 않은 대신 정면이 금강계단을 향하도록 지었기 때문이다.
- 불이문과 마주하고 있는 측면에도 합각을 만들어 양쪽 모두 강조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 따라서 대웅전, 금강계단, 적멸보궁 등 서로 다른 편액이 대웅전의 삼면 각각에 걸려 있다.
-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 형태이다.
-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가구식 기단을 가지고 있다.
- 공포는 다포식 구조가 사용되었다.
- 우물마루 바닥과 층단천장을 이루며 우물천장으로 마무리된 천장 구조가 돋보인다.
역사
참고자료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梁山 通度寺 大雄殿 및 金剛戒壇),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