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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 극락전<ref>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국보 제22호 경주 불국사 연화교 및 칠보교"를 건너 안양문 뒤에 있는 극락전에 모셔져 있다.오늘날 "연화교 및 칠보교"를 통해 바로 갈 수 없다. 그러므로 대웅전 옆길과 미술관 옆길을 통해 극락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ref>에 소재해 있다. |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 극락전<ref>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국보 제22호 경주 불국사 연화교 및 칠보교"를 건너 안양문 뒤에 있는 극락전에 모셔져 있다.오늘날 "연화교 및 칠보교"를 통해 바로 갈 수 없다. 그러므로 대웅전 옆길과 미술관 옆길을 통해 극락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ref>에 소재해 있다. | ||
− | *경주시 토함산 기슭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대성은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 석굴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 + | *불국사 |
− | *시간은 흘러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불국사는 의병이 주둔지로 이용한 탓에 모두 불타고, 석탑과 석조물만 남게 되었다. 이후 대웅전 등 일부를 다시 세우고, 1969~1973년 불국사 복원 사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는 웅장한 불국사가 재탄생되었다. 이후 건축미, 수리(복원), 종교,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불국사와 석굴암은 1995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 | **경주시 토함산 기슭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대성은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 석굴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
+ | **시간은 흘러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불국사는 의병이 주둔지로 이용한 탓에 모두 불타고, 석탑과 석조물만 남게 되었다. 이후 대웅전 등 일부를 다시 세우고, 1969~1973년 불국사 복원 사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는 웅장한 불국사가 재탄생되었다. 이후 건축미, 수리(복원), 종교,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불국사와 석굴암은 1995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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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8일 (금) 16:21 판
요약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불국사 극락전에 모셔진 높이 1.66m의 불상이다.
불상 | 경주불국사금동아미타여래좌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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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 국보 제27호 |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 금속조 / 불상 |
수량/면 | 1구 |
지정(등록)일 | 1962년 12월 20일 |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15-0 불국사 |
시대 | 통일신라시대 |
소유자 | 불국사 |
관리자 | 불국사 |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 극락전[1]에 소재해 있다.
- 불국사
- 경주시 토함산 기슭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대성은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 석굴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 시간은 흘러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불국사는 의병이 주둔지로 이용한 탓에 모두 불타고, 석탑과 석조물만 남게 되었다. 이후 대웅전 등 일부를 다시 세우고, 1969~1973년 불국사 복원 사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는 웅장한 불국사가 재탄생되었다. 이후 건축미, 수리(복원), 종교,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불국사와 석굴암은 1995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형상
머리
얼굴
몸
- ↑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국보 제22호 경주 불국사 연화교 및 칠보교"를 건너 안양문 뒤에 있는 극락전에 모셔져 있다.오늘날 "연화교 및 칠보교"를 통해 바로 갈 수 없다. 그러므로 대웅전 옆길과 미술관 옆길을 통해 극락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