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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서울』은 해방공간에 발행된 종합 시사주간지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주간지는 1922년 9월 3일에 최남선이 창간한 『동명(東明)』이었다. 표지는 ‘시사주보 동명’이라는 제호 아래 ‘조선민족아 일치합시다, 민족적 자조(自助)에 일치합시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민족주의적인 편집경향을 분명히 하였던 주간신문이었으며, 시사문제와 국학관계 논문, 창작 문예작품과 함께 외국작품을 소개하는 등 격조 높은 종합 시사주간지였다. 최남선의 「조선 통속 역사강화」를 비롯한 여러 국학관계 논문들이 이러한 성격을 더욱 강하게 드러내었다. 그러나 동명은 1923년 6월 3일까지 9개월 동안 총 40호를 발행하고 중단하였다. 그 대신 최남선은 『시대일보』를 창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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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서울』은 1947년 8월 5일 해방공간에 발행된 민족주의적 성향의 종합 시사주간지이다. 광복 이후에 창간되어 해방공간에 가장 오랜 기간 발행된 본격적인 주간지가 바로 『주간서울』이었다. 총 93호 중 59호만이 남아 있으며, 1949년에 [[이육사]] 시인의 유시 세 편을 간행한 바 있다.
그 후로는 본격적인 특기할 종합 시사주간지가 없었다. 그리고 광복 이후에 창간되어 해방공간에 가장 오랜 기간 발행된 본격적인 주간지가 『주간서울』이었다.
 

2023년 12월 6일 (수) 14:09 판

개요

『주간서울』은 1947년 8월 5일 해방공간에 발행된 민족주의적 성향의 종합 시사주간지이다. 광복 이후에 창간되어 해방공간에 가장 오랜 기간 발행된 본격적인 주간지가 바로 『주간서울』이었다. 총 93호 중 59호만이 남아 있으며, 1949년에 이육사 시인의 유시 세 편을 간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