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당"의 두 판 사이의 차이

dh_edu
이동: 둘러보기, 검색
3번째 줄: 3번째 줄:
 
===건축물 정보===
 
===건축물 정보===
 
<big>영주 부석사 조사당 (榮州 浮石寺 祖師堂)</big>
 
<big>영주 부석사 조사당 (榮州 浮石寺 祖師堂)</big>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후기)<ref> 부석사 조사당은 창건연대가 확실하지 않지만, 기록된 묵서에 따르면 1377년 원응(圓應)국사가 다시 세웠고, 1490년(성종 21)에 중수하였다고 한다.</ref>
+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후기)- 고려 우왕 3년(1377)<ref> 부석사 조사당은 창건연대가 확실하지 않지만, 기록된 묵서에 따르면 1377년 원응(圓應)국사가 다시 세웠고, 1490년(성종 21)에 중수하였다고 한다.</ref>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
 
*특징: 국보 제19호
 
*특징: 국보 제19호
  
부석사 조사당의 부분은 고려 말 조선 초기의 건축 방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비슷한 시기의 건축물과 달리 장식이 절제되어 있다. 또한 부석사 조사당 벽화(국보, 1962년 지정)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회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30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조사당 </ref><br/>
+
부석사 조사당의 부분은 고려 말 조선 초기의 건축 방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비슷한 시기의 건축물과 달리 장식이 절제되어 있다. 또한 부석사 조사당 벽화(국보, 1962년 지정)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회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ref>http://www.grandculture.net/yeongju/toc/GC07400472 디지털영주문화대전 </ref><br/>
무량수전은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다.<ref>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13700180000&pageNo=1_1_2_0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ref>
+
목조 건축물로서 내부에 부석사의 창건주인 의상스님의 상()을 봉안하고 있다. 조사당 앞 처마 밑에는 의상스님이 사용하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더니 자라났다는 전설이 깃든 골담초가 있다.<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30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영주 부석사 조사당</ref>
 +
擢玉森森依寺門(탁옥삼삼의사문) / 僧言卓錫化靈根(승언탁석화령근)
 +
杖頭自有曺溪水(장두자유조계수) / 不借乾坤雨露恩(불차건곤우로은)
 +
스님이 말하길, 지팡이가 신기하게 뿌리를 내렸다 하네
 +
지팡이 머리에 저절로 조계수가 생기니, 비와 이슬의 은혜를 입지 않았네
 +
 
  
일반적인 불전은 건물 중심에 불단을 놓고 불상을 건물의 방향과 같게 한다. 그러나 부석사 무량수전은 불단을 건물 서쪽에 치우쳐 배치하고 불상이 동쪽을 향하도록 만들었으며 내부 바닥에는 유약을 바른 전돌을 깔았다. 이것은 아미타불이 서방 극락세계에 있고 극락세계는 바닥이 유리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불경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무량수전과 같은 구성은 건물의 깊이를 확보하고 불단으로 향하는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관련 건축물===
 
===관련 건축물===

2023년 12월 4일 (월) 01:56 판

영주 부석사 조사당

정의

건축물 정보

영주 부석사 조사당 (榮州 浮石寺 祖師堂)

  •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후기)- 고려 우왕 3년(1377)[1]
  •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
  • 특징: 국보 제19호

부석사 조사당의 부분은 고려 말 조선 초기의 건축 방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비슷한 시기의 건축물과 달리 장식이 절제되어 있다. 또한 부석사 조사당 벽화(국보, 1962년 지정)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회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2]
목조 건축물로서 내부에 부석사의 창건주인 의상스님의 상(像)을 봉안하고 있다. 조사당 앞 처마 밑에는 의상스님이 사용하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더니 자라났다는 전설이 깃든 골담초가 있다.[3]

擢玉森森依寺門(탁옥삼삼의사문) / 僧言卓錫化靈根(승언탁석화령근)

杖頭自有曺溪水(장두자유조계수) / 不借乾坤雨露恩(불차건곤우로은) 스님이 말하길, 지팡이가 신기하게 뿌리를 내렸다 하네 지팡이 머리에 저절로 조계수가 생기니, 비와 이슬의 은혜를 입지 않았네


관련 건축물

관계

출처

  1. 부석사 조사당은 창건연대가 확실하지 않지만, 기록된 묵서에 따르면 1377년 원응(圓應)국사가 다시 세웠고, 1490년(성종 21)에 중수하였다고 한다.
  2. http://www.grandculture.net/yeongju/toc/GC07400472 디지털영주문화대전
  3.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30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영주 부석사 조사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