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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알지 | |이름 = 김알지 |
2022년 12월 10일 (토) 15:22 판
김알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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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김알지 |
신상정보 | |
이름 | 김알지 |
별호 | |
원어 이름 | |
국가 | 신라 |
재위 기간 | 없음 |
출생 | A.D 65년 3월 (음력) |
사망 | 알 수 없음. |
부친 | 알 수 없음. |
모친 | 알수 없음. |
배우자 | 알 수 없음. |
정의
신라 왕족인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신화이다.
역사
김알지는 탈해왕 때 태자로 책봉되긴 하였으나 왕위에는 오르지 못한 인물이다. 김알지의 탄생담이 이토록 오랫동안 전승될 수 있었던 이유는 김씨 최초로 왕위 된 미추왕 대 이후였을 것이다. 이후로 신라의 왕은 김씨가 계속 독점하여 역대 56명의 왕 중 38명이 김씨계에서 배출되었기 때문에 망각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줄거리
김알지신화는 김부식이 서술한 정사인 『삼국사기』와 일연이 서술한 민담적 성격을 지닌 『삼국유사』의 구체적인 내용이 다르다.
공통점
숲속에서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리자 호공(瓠公-관리의 하나)을 보내어 이를 살피게 했다. 숲속에 궤짝이 있었고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그 궤를 열어 보니 남자 아이가 누워있다 곧 일어났다.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씨라 하였고 총명하여 태자의 지위에 올렸다.
차이점
- 『삼국유사』
"탈해왕 9년 3월에 왕이 밤중에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 숲속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자 호공(瓠公)을 보내어 이를 살펴보도록 하였다.호공이 시림에 다다라 보니 금빛의 작은 괘짝이 나뭇가지에 달려 있고 흰 닭 그 아래서 울고 있었다. 이 사실을 듣고 왕은 궤짝을 가져오게 하여 열어 보니 조그만 사내아이가 그 속에 들어있었는데, 용모가 기이하게 뛰어났다. 왕은 기뻐하며 하늘이 그에게 아들을 내려보낸 거라 하여 거두어 길렀으니, 그 아이는 자라감에 따라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나서 그 이름을 알지라 하였다. 또, 금빛 궤짝에서 나옴을 연유로 하여 성을 김씨라 하고, 처음 발견되었던 장소인 시림을 고쳐 계림(鷄林)이라 이름하고, 이로써 국호를 삼았다."
- 『삼국사기』
"영평(永平 : 後漢 明帝의 연호) 3년 경신(庚申) 8월 4일에
이 밤에 월성(月城) 서리(西里)를 지나다가 큰 빛[大光明]이 시림 속에 비침을 보았다.붉은 구름이 하늘로부터 땅으로 뻗쳤는데 구름 한가운데 황금 궤짝이 나무 끝에 걸려 있었고, 빛이 궤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또한,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이를 왕에게 아뢰
궤를 열어보니 어린 남자 아이가 누워 있다가 곧 일어났다. 이는 박혁겨세의 옛일과 같으므로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씨라 하였다."
분석 및 의의
①김알지신화의 전승의 의미
정의 파트에서 서술했듯 김알지신화는 건국신화가 아니라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설화이다. 만일, 그의 후손인 김씨들이 왕위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그의 이러한 신이한 탄생은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7대조 후손인 미추왕이 김씨 최초로 왕위에 오름에 따라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신라 김씨 왕조는 본디 3성이(김,석,박) 고루 왕위를 하던 것에서 김씨 왕주 위주의 부자세습체계로 바뀌며 신라 역대 56명의 왕 중 총 38명이 김씨계에서 배출되었다. 이런 배경 덕분에 김알지신화는 망각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② 시조신화로서 다른 성씨 시조신화들보다 신비한 특성
①에서 언급한 내용과 상통하는 부분이다. 김알지신화는 시조신화이면서도 다른 성씨신화들보다 신비함이나 우월함을 연상하는 모티프가 더 많이 쓰였다. 한국에서 천강의 요소는 왕에게만 허용된 신화소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씨 시조들은 하늘 대신 땅,바다,못 등을 사용하는 데 김알지신화에서 천강의 요소가 나타나는 것은 그의 후손이 대대로 신라의 왕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③ 신라 문화에서 '닭'의 상징이 갖는 의미를 확인하게 하는 자료
닭은 신라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동물이다. 줄거리에서 볼 수 있듯 알지가 나온 시림을 계림이라 고치고 국호로 삼다. 신라인들이 닭을 숭상했음이 인도까지 알려졌다는 기록도 있다. 특히 김씨 집단이 닭을 중요하게 여겨 5세기 이후 이들이 부자세습으로 권력을 독점하면서 이런 경향이 심해졌다. 천마총에서 계란 실물이 토기에 담겨 출토된 점도 이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특히 바로 이 김알지신화가 신라, 그중에서도 김씨 왕조가 닭을 중시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자료이다.
모티프
- 석탈해신화는 천강모티프로 이루어져 있다.
삼국시대의 시조신화는 모두 하늘에 출생 근원을 두고 있는 인간 생명의 강하(降下)로서의 천생관(天生觀)이다.천생관에 의한 천강시조신화(天降始祖神話)는 다시 「동명왕신화」·「단군신화」와 같이 신성혼(神聖婚)에 의하여 의신화(擬神化)되는 것(신과 인간의 결합)과, 「박혁거세신화」·「김수로신화」와 같이 알의 형상으로 강천한다는 난생설화와 「김알지신화」처럼 처음부터 인간의 모습으로 강천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즉, 김알지신화는 삼국의 시조신화 중 거의 유일하게 완전한 인간의 모습 그대로 강천했다는 데 특이점이 있다.
- 김알지신화는 신수모티프로 이루어져 있다.
신수모티프는 신이한 동물이 등장하는 것을 말하는데 김알지신화에서는 흰 닭이라는 신수가 등장한다.
- 김알지신화는 난생모티프를 금괘로 대신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김알지 신화 발원지
참고문헌
홍성식,"김씨 왕조의 시조가 태어난 곳, 왜 '닭의 숲'이라 불렸을까",오마이뉴스,2021.11.08 2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