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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Émile Zola)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언론인으로, 1840년 4월 2일 파리에서 태어나 1902년 9월 29일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자연주의 문학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다른 매체로 수 차례 각색되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테레즈 라캥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의 원작으로 유명하다. <p> | 에밀 졸라(Émile Zola)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언론인으로, 1840년 4월 2일 파리에서 태어나 1902년 9월 29일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자연주의 문학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다른 매체로 수 차례 각색되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테레즈 라캥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의 원작으로 유명하다. <p> | ||
− | 에밀 졸라는 19세기 프랑스, 특히 제 2 제정 시기의 프랑스 사회를 묘사한 소설을 집필하였다. 《루공-마카르 총서》, | + | 에밀 졸라는 19세기 프랑스, 특히 제 2 제정 시기의 프랑스 사회를 묘사한 소설을 집필하였다. 《루공-마카르 총서》, 《[[테레즈 라캥(소설)]]》 등이 그것이다. <p> |
그는 언론인이자 참여적 지식인이기도 했는데,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1898년 1월 일간지 "로로르"에 실으며 드레퓌스 사건에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 그는 언론인이자 참여적 지식인이기도 했는데,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1898년 1월 일간지 "로로르"에 실으며 드레퓌스 사건에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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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하는 지성인; 나는 고발한다== | ==참여하는 지성인; 나는 고발한다== | ||
에밀 졸라를 수식하는 또 다른 이름은 ‘참여적 지식인’이다. 볼테르가 18세기를, 사르트르가 20세기를 대표한다면 에밀 졸라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참여적 지식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는 ‘드레퓌스 사건’에 참여하여 그의 무죄를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로로르>지에 실었던 <나는 고발한다> 외에도 수많은 글을 신문사에 실어 드레퓌스의 무죄, 유대인을 향한 광기에 대한 비판, 지식인들의 사회 참여를 요구했다. <p> | 에밀 졸라를 수식하는 또 다른 이름은 ‘참여적 지식인’이다. 볼테르가 18세기를, 사르트르가 20세기를 대표한다면 에밀 졸라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참여적 지식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는 ‘드레퓌스 사건’에 참여하여 그의 무죄를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로로르>지에 실었던 <나는 고발한다> 외에도 수많은 글을 신문사에 실어 드레퓌스의 무죄, 유대인을 향한 광기에 대한 비판, 지식인들의 사회 참여를 요구했다. <p> | ||
− | 당시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유명한 지식인이었고, 그의 지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드레퓌스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글 때문에 여론이 뒤집히고 드레퓌스가 무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에밀 졸라는 그의 행보 때문에 그의 지위와 재산을 거의 모두 잃고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영국에서도 | + | 당시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유명한 지식인이었고, 그의 지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드레퓌스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글 때문에 여론이 뒤집히고 드레퓌스가 무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에밀 졸라는 그의 행보 때문에 그의 지위와 재산을 거의 모두 잃고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영국에서도 집필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결국 의문의 가스 사고로 숨을 거두었는데, 누군가 그를 암살하고자 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그러나 정황만으로 그쳤고, 실제 범인은 잡힌 바가 없다. |
2022년 12월 9일 (금) 21:22 판
에밀 졸라 Emile Zol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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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40년 9월 29일 |
사망 | 1902년 9월 29일 |
국적 | 프랑스 |
사조 | 자연주의, 자유사상 |
수상 | 레지옹 도뇌르 훈장 |
에밀 졸라(Émile Zola)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언론인으로, 1840년 4월 2일 파리에서 태어나 1902년 9월 29일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자연주의 문학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다른 매체로 수 차례 각색되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테레즈 라캥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의 원작으로 유명하다.
에밀 졸라는 19세기 프랑스, 특히 제 2 제정 시기의 프랑스 사회를 묘사한 소설을 집필하였다. 《루공-마카르 총서》, 《테레즈 라캥(소설)》 등이 그것이다.
그는 언론인이자 참여적 지식인이기도 했는데,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1898년 1월 일간지 "로로르"에 실으며 드레퓌스 사건에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생애
에밀 졸라는 파리에서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에밀 졸라가 7세 때 사망하였고, 에밀 졸라는 어머니, 외할머니와 함께 자랐다. 그는 엑상프로방스에서 바유와 세잔 등과 친분을 쌓고, 어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18살이 되던 해 엑상프로방스를 떠나 파리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는 화가들과 작가들과 친하게 지내며 자신의 소양을 높였으며, 1867년 첫 작품인 《테레즈 라캥》으로 자연주의 작가로서 인정받았다.
그는 또한 정치부 기자이기도 했는데, 그의 행보는 많은 지지를 받았으며, 그의 친구들을 통해 많은 기회를 얻어 논객으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직전 에밀 졸라는 아내 알렉상드린과 결혼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징집되지 않았다. 이후 그는 계속해서 집필활동을 했고, 1877년 <목로주점>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찾게 된다.
그가 영향력 있는 작가였을 때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났고, 그는 드레퓌스를 옹호하였으며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작성했다. 그 때문에 그는 보수주의자와 군부들에게 위협을 받으며 결국 영국으로 망명을 떠난다. 망명을 떠난 뒤 프랑스로 돌아온 이후에도 계속해서 괴롭힘을 받다, 1902년 의문의 가스 사고로 숨을 거둔다.
문학사적 의의
자연주의 사조; 테레즈 라캥
자연주의는 낭만주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문학사조이다. 19세기 프랑스 등에서 등장하였다. 자연주의 사조는 사실주의의 일종으로 평가된다. 사실주의가 있는 그대로를 서술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 반면, 자연주의 사조는 사실적 묘사에 더하여 인물이 놓인 환경과 유전적 특성을 분석하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해부하듯이 서술한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사실주의 사조와 같다고 평하기도 한다. 인간 심리와 환경, 기질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묘사, 인간의 어두운 욕망의 생성과 소멸 과정은 후대 문학, 특히 상징주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에밀 졸라는 자신의 소설이 정밀하고 과학적이기를 원했다. 낭만적인 감정의 과잉에 반대했으며, 소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하여 집필 전 자세한 공부와 조사 과정이 선행되었다. 그가 소설 《제르미날》을 쓰기 위해 광산을 몇 달에 걸쳐 방문했다는 것은 아주 유명한 일화이다.
에밀 졸라는 《테레즈 라캥》을 시작으로 ‘자연주의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가 《루공 마카르 총서》에 실었던 소설들이 대개 자연주의 류의 소설인데, 소설의 전개 과정에서 사건의 근거를 사회유전적 원칙으로 삼는 등, 자연주의적 색채가 뚜렷이 드러나 있다.
참여하는 지성인; 나는 고발한다
에밀 졸라를 수식하는 또 다른 이름은 ‘참여적 지식인’이다. 볼테르가 18세기를, 사르트르가 20세기를 대표한다면 에밀 졸라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참여적 지식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는 ‘드레퓌스 사건’에 참여하여 그의 무죄를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로로르>지에 실었던 <나는 고발한다> 외에도 수많은 글을 신문사에 실어 드레퓌스의 무죄, 유대인을 향한 광기에 대한 비판, 지식인들의 사회 참여를 요구했다.
당시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유명한 지식인이었고, 그의 지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드레퓌스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글 때문에 여론이 뒤집히고 드레퓌스가 무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에밀 졸라는 그의 행보 때문에 그의 지위와 재산을 거의 모두 잃고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영국에서도 집필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결국 의문의 가스 사고로 숨을 거두었는데, 누군가 그를 암살하고자 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그러나 정황만으로 그쳤고, 실제 범인은 잡힌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