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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鄭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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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21일 (토) 22:54 판

정철(鄭澈)

정철.jpg


분류 내용
생몰년도 1536년(중종 31) ~ 1593년(선조 26)
자(字) / 호(號) 자: 계함(季涵) / 호: 송강(松江)
출신 전라도 나주 (현 전남 나주시)
활동 시기 조선 중기 (선조 대)
주요 직책 강원도 관찰사, 이조판서, 예조판서 등 요직 역임
대표 문학 장르 가사, 시조, 한시
주요 작품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훈민가》, 《성산별곡》 등

생애와 정치적 배경

정철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 문신이자 시인으로, 성리학적 충절과 예술적 감수성을 겸비한 선비 문학의 정점에 선 인물이다. 1548년(명종 3), 열세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형 정유침에게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퇴계 이황의 문하에 있었으며, 문장과 시에 뛰어나 젊은 시절부터 명성을 얻었다. 이후 선조 대에 관직에 오르며 동인 세력의 중심 인물로 활약했으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여러 차례 유배와 복직을 반복하였다.

1573년: 강원도 관찰사 부임 → 《관동별곡》 창작

1580년대: 선조의 총애 속 출세 → 다시 정계 중심으로

1591년: 동인·서인의 정쟁 중 사직

1593년: 병사, 향년 58세

그의 삶은 충신이자 정치가로서의 갈등, 선비의 고고한 품격, 그리고 문학인으로서의 열정이 교차한 여정이었다.

문학 세계의 특징


유교적 충절, 임금에 대한 연군의 정, 자연 예찬, 자아 성찰, 선비의 삶
조선 중기 가사 문학의 정형화, 연군가사와 기행가사의 완성
정격 가사 형식 사용 (4음보, 운율감 풍부), 한문학 기반의 정제된 표현
철저한 유교적 가치관, 자연과 정치의 융합, 감정과 이성의 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