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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일 (일) 11:51 판
기본정보
환수경로 | 미환수 ( 일본 ) |
시기 | 백제 |
형태 | 금동불상 |
현소장처 | 도쿄국립박물관 |
금동반가사유상은 전세계 약 70여점 정도가 남아있어 높은 희귀성을 가진 불상이다.
기본정보
형태
공주에서 출토된 금동반가사유상은 높이 16.cm의 작은 불상이다.
보관의 중앙에 반 타원형을 중심으로 상부와 좌우에는 꽃잎 장식이 보이며 2줄의 보관대(寶冠帶)를 뒷부분의 양쪽에서 돌기로 마무리하였다.
옆머리에서 내려진 보발(寶髮)은 어깨에서 원 장식으로 묶은 뒤 세 가닥으로 나뉘어 팔 윗부분을 덮고 있다. 이러한 보관 형식은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의 것과 유사하다.
재질
반가사유상 본체의 청동성분은 모두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다. 납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것은 고대 한국 금동불상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반가사유상의 가치
공주에서 출토된 반가사유상은 작은 크기의 불상이지만, 조형미가 매우 사실적이며 빼어나다.
일반적으로 크기가 작은 반가사유상은 표현이 세밀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은 균형감이 매우 뛰어나며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압권이다.
유출 과정
도쿄국립박물관의 전시 설명에는 한국 충남 공주의 사지 석탑 내에서 발견됐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일본 고고학계에서는 충청남도 공주 부근 산성의 탑 가운데에서 발견됐다고 기록되어 있다.
소장자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발간한 〈오구라 컬렉션-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따르면 조선총독부가 한국문화재의 대표작들을 집대성해 편찬한 도록인 〈조선고적도보〉에도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는 경성공소원 판사 미야케 조사쿠(三宅長策, 1868~1969)의 소장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1941년 도쿄에서 열린 소장품 전시 목록에는 오구라의 컬렉션으로 포함된 것을 보면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그 전에 구매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오구라의 경우 일제강점기 도굴꾼 사이에서는 값을 높이 쳐주기로 유명해 도굴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골동품을 들고 찾아갔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오구라의 행적을 살펴봤을 때 공주 절터의 탑에서 도굴된 금동반가사유상이 여러 루트를 거쳐 오구라의 수집품이 됐음을 추정이 가능하다.
환수 시도
오구라 컬렉션은 1965년 한일 문화재 반환 협상 과정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당시 한국 정부는 개인 불법 수집품의 목록에 오구라 컬렉션의 소장품을 포함시켰고, 돌려줄 것을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개인 소장품이라는 이유로 반환을 거부했다.
결국 양국 정부는 “일본 정부는 일본 국민이 소유하는 문화재를 한국에 기증하려 한다면 이를 권장하겠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1981년 오구라 컬렉션은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됐고,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한국에 어떠한 의사타진도 하지 않았다. 사유 재산이라서 돌려줄 수 없다는 오구라 컬렉션은 일본 정부의 국유 재산이 됐다.
일본 국유재산이 된 오구라 컬렉션에 대한 환수운동은 여러 차례 진행되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2014년에는 문화재제자리찾기라는 시민단체가 도쿄재판부에 오구라 컬렉션에 대한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오구라의 자필 목록을 근거로 오구라 컬렉션 중 34점이 명백한 도굴, 도난품임을 문헌적으로 입증하여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을 상대로 법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송은 결렬됐다.
지자체의 환수 노력
2019년부터 충남도는 공주 출토 금동반가사유상을 포함한 지역 유출 오구라 컬렉션의 환수를 위한 조사 등 환수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충남도의회는 지난 2016년 충남도 국외소재문화재 보호 및 환수활동 지원 조례안을 가결하고 2017년에는 충남국외반출문화재실태조사단을 구성해 국내외 반출문화재를 조사·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유출 출처의 불확실성, 개인 소장품을 이유로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