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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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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피! 피!</br><ref>가사는 518기념재단 유튜브-"5월의 노래 2" 영상을 참고했으며, 해당 영상에서 송순규의 락 편곡 버전에 해당하는 가사이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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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피! 피!<ref>가사는 518기념재단 유튜브-"5월의 노래 2" 영상을 참고했으며, 해당 영상에서 송순규의 락 편곡 버전에 해당하는 가사이다.</ref></br>
  
 
==여담==
 
==여담==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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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0일 (월) 16:26 판

개요

19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 불렸던 민중가요 중 한 곡.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나타낸 명곡이다.

상세

번안된 민중가요로서, 원곡은 프랑스 가수 미셸 뽈라레프가 죽은 친구 뤼시앵 모리스를 추모하며 쓴 것으로, 원제는 「Qui a tué grand-maman」이다.
주로 프랑스 샹송을 번안해 부르던 가수 박인희가 1975년 개사해 「사랑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는데, 이때 한 번 리듬이 순화되었다.

이렇게 알려진 노래의 선율에 새로운 가사가 붙으면서 원곡의 리듬에서 더 멀어졌으나 집회의 현장에서는 부르기에 더 적절하게 변하였다.

1절과 2절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기간에 진압 군인들이 행하였던 잔인한 사건을 짧게 묘사한다. 3절과 4절은 5.18민주화운동 진상 규명에 필요한 구호와 반미 감정을 가사에 담았다.

혹자는 1982년부터 「오월의 노래2」를 불렀다고 하지만, 정확하게 시기를 말하는 사람은 '1983년 2학기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라고 말한다. 광주에서는 1985년 무렵에 널리 퍼진 듯하다.

누가 가사를 썼는지 추적하였으나 아직도 미상이다.[1]

가사

1절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2절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디 갔지

망월동에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 서려 있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3절

산 자들아 동지들아 모여서 함께 나가자

욕된 역사 투쟁 없이 어떻게 헤쳐 나가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4절

대머리야 쪽발이야 양키놈 솟은 콧대야

물러가라 우리 역사 우리가 보듬고 나간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피! 피![2]

여담

각주

  1.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오월의 노래2 [五月-]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2. 가사는 518기념재단 유튜브-"5월의 노래 2" 영상을 참고했으며, 해당 영상에서 송순규의 락 편곡 버전에 해당하는 가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