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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현존하는 목조 불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경남 합천 해인사의 ‘신라 쌍둥이 불상’(국보로 승격됨) | 국내에 현존하는 목조 불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경남 합천 해인사의 ‘신라 쌍둥이 불상’(국보로 승격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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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함께 보물로 지정됐던 두 불상이 10년 만에 국보로 승격됐다. | 2012년 함께 보물로 지정됐던 두 불상이 10년 만에 국보로 승격됐다. | ||
2023년 12월 8일 (금) 10:55 판
위치
대한민국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가야산
주요 유물
고려시대 승려 ‘희랑대사’의 실제 모습을 조각한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보물 제999호)
- 2020년에 국보로 승격됐다.
- 건칠희랑대사좌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 조각으로, 고려시대인 10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 희랑대사는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도움을 준 인물로 왕건은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해인사 중창(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지음)에 필요한 토지를 하사하고 국가의 중요 문서를 해인사에 두었다.
- 문화재청에 따르면 비슷한 시기 중국과 일본에서는 고승(승려를 높여 이르는 말)의 조각상을 많이 제작했지만 우리나라에는 유례(같거나 비슷한 예)가 거의 전해지지 않으며 ‘희랑대사좌상’이 실제 생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재현한 유일한 조각품으로 전래[1]되고 있다.
-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의 조사 결과, 이 조각상은 얼굴과 가슴, 손, 무릎 등 앞면은 건칠(삼베 등에 옻칠해 여러 번 둘러 형상을 만드는 기법)로, 등과 바닥은 나무를 조합해 만들어졌고 후대에도 변형 없이 제작 당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 문화재청은 “제작 당시 모습이 잘 남아 있고 실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내면의 인품까지 표현한 점에서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면서 “고려 초 10세기 우리나라 초상조각의 실체를 알려주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자 희랑대사의 높은 정신세계를 조각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역사ㆍ예술ㆍ학술 가치가 탁월하다”고 밝혔다.
합천 해인사 법보전 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
국내에 현존하는 목조 불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경남 합천 해인사의 ‘신라 쌍둥이 불상’(국보로 승격됨)
2012년 함께 보물로 지정됐던 두 불상이 10년 만에 국보로 승격됐다.
관련 전설
(미완성)
- ↑ 예로부터 전하여 내려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