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4.18 학생시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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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1,2차 마산시위를 계기로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된 후 대학생들도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대학 연합 시위가 계획되기 시작했으며 서울 시내 대학의 전체 거사일이 21일로 정해졌지만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먼저 시위를 시작했다. 4월 18일 고려대생 3천여 명이 마산사건의 책임자 처벌, 경찰의 학원출입 금지 등을 담은 '4.18 선언문'을 낭독하고 국회의사당을 향해 시내로 진출하였다. 평화적인 시위였음에도 이들은 귀교 도중 청계천 4가에서 유지광이 지휘하는 '반공청년단'과 깡패 100여 명의 습격을 받아 수십 명이 부상당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국민들은 이 소식에 분노하여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br/>
 
앞선 1,2차 마산시위를 계기로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된 후 대학생들도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대학 연합 시위가 계획되기 시작했으며 서울 시내 대학의 전체 거사일이 21일로 정해졌지만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먼저 시위를 시작했다. 4월 18일 고려대생 3천여 명이 마산사건의 책임자 처벌, 경찰의 학원출입 금지 등을 담은 '4.18 선언문'을 낭독하고 국회의사당을 향해 시내로 진출하였다. 평화적인 시위였음에도 이들은 귀교 도중 청계천 4가에서 유지광이 지휘하는 '반공청년단'과 깡패 100여 명의 습격을 받아 수십 명이 부상당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국민들은 이 소식에 분노하여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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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4일 (월) 22:4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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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1,2차 마산시위를 계기로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된 후 대학생들도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대학 연합 시위가 계획되기 시작했으며 서울 시내 대학의 전체 거사일이 21일로 정해졌지만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먼저 시위를 시작했다. 4월 18일 고려대생 3천여 명이 마산사건의 책임자 처벌, 경찰의 학원출입 금지 등을 담은 '4.18 선언문'을 낭독하고 국회의사당을 향해 시내로 진출하였다. 평화적인 시위였음에도 이들은 귀교 도중 청계천 4가에서 유지광이 지휘하는 '반공청년단'과 깡패 100여 명의 습격을 받아 수십 명이 부상당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국민들은 이 소식에 분노하여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고려대학생 4.18 선언문====
“친애하는 고대 학생 제군!
한마디로 대학은 반향과 자유의 표상이다. 이제 질식할 듯한 기성독재의 최후적 발악은 바야 흐로 전체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기에 역사의 생생한 증언자적 사명을 땐 우리 들 청년학도는 이 이상 역류하는 피의 분노를 억제할 수 없다. 만약 이와 같은 극단의 악덕과 패륜을 포용하고 있는 이 탁류의 역사를 정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후세의 영원한 저주를 면치 못하리라.
말할 나위도 없이 학생이 상아탑에 안주치 못하고 대사회투쟁에 참여해야만 하는 오늘의 20대는 확실히 불행한 세대이다. 그러나 동족의 손으로 동족 의 피를 뽑고 있는 이 악랄한 현실을 방관하랴.
존경하는 고대 학생 동지 제군!
우리 고대는 과거 일제하에서는 항일투쟁의 총본 산이었으며 해방 후에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사수하기 위하여 멸공전선의 전위적 대열에 섰으나 오늘은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한 반항의 봉화를 높이 들어야하겠다.
고대 학생 동지 제군!
우리는 청년학도만이 진정한 민주역사창조의 역군 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여 총궐기하자.

구호
하나. 기성세대는 자성하라.
하나. 마산사건의 책임자를 즉시 처단하라.
하나. 우리는 행동성이 없는 지식인을 배격한다.
하나. 경찰의 학원출입을 엄금하라.
하나. 오늘의 평화적 시위를 방해치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