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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신문(自由新聞)에 대한 서술이 이루어지는 페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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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에 [[이육사]]시인의 작품 [[광야]]이 발표된 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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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0월 5일, 정진석이 창간한 일간 신문이다. 정진석이 편집인과 발행인을 맡고, 정인익<ref>일제시기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每日申報)》 편집국장</ref>이 사장을 맡았다. 이외에는 편집위원장 이정순, 정경위원 이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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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위원 배은수, 편집위원 마태영, 총무위원 서정억 등이 참가했다. 교육, 문화의 측면에서 전체 인민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일에 중점을 두었던 신문이다.<ref>김보영, 한양대학교, <자유신문 해제>.</ref>
1945년 정진석이 창간한 일간 신문이다. 정진석이 편집인과 발행인을 맡고, 정인익이 사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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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에 해당 신문에 [[이육사]] 시인의 작품 [[광야]]가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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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30일 (목) 22:12 판

개요

자유신문(自由新聞)에 대한 서술이 이루어지는 페이지이다.

1945년 10월 5일, 정진석이 창간한 일간 신문이다. 정진석이 편집인과 발행인을 맡고, 정인익[1]이 사장을 맡았다. 이외에는 편집위원장 이정순, 정경위원 이원영 , 사회위원 배은수, 편집위원 마태영, 총무위원 서정억 등이 참가했다. 교육, 문화의 측면에서 전체 인민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일에 중점을 두었던 신문이다.[2]

1945년에 해당 신문에 이육사 시인의 작품 광야가 발표되었다.

  1. 일제시기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每日申報)》 편집국장
  2. 김보영, 한양대학교, <자유신문 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