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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에 [[이육사]]시인의 작품 [[광야]]이 발표된 신문이다.
 
1945년에 [[이육사]]시인의 작품 [[광야]]이 발표된 신문이다.
  
1945년에, 정진석이 당시 창간한 일간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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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정진석이 창간한 일간 신문이다. 정진석이 편집인과 발행인을 맡고, 정인익이 사장을 맡았다.
  
 
정인익(鄭寅翼)이 창간하였다. 사장은 정인익, 발행인 · 편집인 겸 주필은 정진석이 맡았다. 후에 신익희(申翼熙)가 사장에 취임하였다..
 
 
1949년 7월 7일에는 호역(콜레라)기사를 다루어 서울시 당국의 고발로 정인익 · 정진석 등이 구금되기도 하였다.
 
 
6·25 때 정인익이 납북당하고 1952년 5월 26일 폐간되었다. 그 뒤 1953년 9월 7일 백남일이『자유신보(自由新報)』라는 제호로 『자유신문』의 속간형식으로 발행하였다.
 
 
이때의 편집진은 사장 백남일, 부사장 이상협, 고문 최남선, 편집국장 심정섭, 주필 김석길등으로, 창간사에서 ‘자유 · 희망 · 약진’을 강조하면서 국민전체의 대변지가 될 것을 다짐하였다.
 
 
그 뒤 다시 『자유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하고 발행인 겸 편집인도 김갑린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재정을 지원하던 태창방직(주)이 침체되자 경영난에 부딪쳐 1961년 4월 6일부터 휴간하다가, 8월 6일 폐간하였다.
 
  
  
  
 
[[분류:폼폼푸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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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30일 (목) 22:07 판

개요

자유신문(自由新聞)에 대한 서술이 이루어지는 페이지이다.

1945년에 이육사시인의 작품 광야이 발표된 신문이다.

1945년 정진석이 창간한 일간 신문이다. 정진석이 편집인과 발행인을 맡고, 정인익이 사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