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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역사== | ||
− | <일월노리푸념>은 1933년 평안북도 강계시에 사는 전명수 무격의 구연본을 손진태가 채록하여 『청구학총』28호에 발표한 서사무가이다. <돈전풀이>는 함흥에서 월남하여 부산에 거주하는 강춘옥 무녀의 보유자료를 1965년 임석재와 장주근이 채록하여 『중요무형문화재지정자료(관북지방무가)』에 수록한 자료이며, <궁상이굿>은 김태곤이 1966년 함흥에서 월남한 이고분의 보유자료를 채록하여 『한국무가집』3에 수록한 것이다. | + | <일월노리푸념>은 1933년 평안북도 강계시에 사는 전명수 무격의 구연본을 손진태가 채록하여 『청구학총』28호에 발표한 서사무가이다. <ref><돈전풀이>는 함흥에서 월남하여 부산에 거주하는 강춘옥 무녀의 보유자료를 1965년 임석재와 장주근이 채록하여 『중요무형문화재지정자료(관북지방무가)』에 수록한 자료이며, <궁상이굿>은 김태곤이 1966년 함흥에서 월남한 이고분의 보유자료를 채록하여 『한국무가집』3에 수록한 것이다.</ref> |
==줄거리== | ==줄거리== | ||
− | 명월각시 | + | '''명월각시 해당금'''과 '''궁산선비'''는 말을 붙여 본지 삼 년 만에 가난하게 혼례를 치르고 신혼생활을 시작하였다. 궁산이는 명월각시가 너무 예뻐서 잠시도 곁을 떠나지 못하여 아무것도 벌지 못해 밥을 굶기까지 하였다. 명월각시는 궁산이에게 자신의 화상을 그려 주며 이것을 가지고 가서 나무를 해 오라고 한다. 궁산이가 화상을 나무에 걸어 놓고 쳐다보며 나무를 하는데, 광풍에 화상이 날아가 아랫녘 배 선비네 집에 가서 떨어졌다. '''배 선비'''는 화상을 보고 명월각시의 미모를 탐하게 되고, 배에 생금을 실어 궁산이에게 가서 내기 장기를 두자고 한다. <ins>'''궁산이는 명월각시를 걸고 배 선비는 생금 한 배를 걸고 내기 장기를 두었는데 궁산이가 세 판을 모두 지면서 명월각시를 배 선비에게 내어 주게 되었다.'''</ins> 명월각시를 빼앗기고 궁산이가 식음을 전폐한다는 소식을 들은 명월각시는 계집종을 자기 대신 변장시켜 놓고 자기는 종 노릇을 하여 헌 치마를 입고 한 다리를 절면서 물을 긷겠다고 한다. 배 선비는 명월각시가 종으로 변장한 것을 알고 물 긷는 종년을 달라고 하자, 할 수 없이 배 선비에게로 가게 된다. 명월각시는 닷새 말미를 얻어 소를 잡아 포육을 떠서 궁산이 바지와 저고리에 솜처럼 넣어 두고 바늘 한 쌈과 명주실 한 꾸러미를 옷 속에 넣어 놓는다. 그리고, 배 선비에게 부탁해서 궁산이를 데리고 가다가 어느 섬에 내려놓고 간다. 그곳에서 궁산이는 옷 속의 포육을 먹고 바늘로 낚시를 만들어 고기를 잡아 먹으며 살다가, 섬에서 만난 학의 새끼를 먹여 살리고 어미 학의 도움으로 학을 타고 섬에서 나와 거지가 되어 다닌다. 한편, 명월각시가 배 선비와 살면서 웃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자 배 선비가 소원을 묻는다. <ins>'''명월각시는 배 선비에게 거지를 위한 잔치를 사흘만 열어 달라고 부탁한다.'''</ins> 궁산이는 거지를 위한 잔치에 참여하였지만 자리를 잘못 잡아 사흘을 못 얻어먹고 팔자 한탄을 하였다. 그런데, 명월각시가 이를 알고 따로 상을 차려 그를 먹인 후 구슬옷을 내어 놓으며 이 옷의 깃을 잡아 고들을 들추어 입으면 내 낭군이라고 말한다. 궁산이가 이 구슬옷을 입고 백운 중천에 높이 떴다가 내려오자, 배 선비도 따라서 구슬옷을 입고 백운 중천에 올라갔으나 벗는 재주를 배우지 못하여 내려오지 못하고 거기서 죽어 솔개가 된다. <ins>'''궁산이와 명월각시는 다시 만나 살다가 죽은 뒤 그들의 혼령이 일월신이 된다.'''</ins> |
==분석== | ==분석== | ||
− | + | 궁산선비와 명월각시가 부부로 결합하고 궁산이가 내기 장기에 져서 부인을 배 선비에게 빼앗겼다가 다시 만나 재결합한다는 내용은 <아내의 초상화>, <새신랑>, <우렁각시> 등 여러 가지 민담 유형과 유사하다. 그러나 전체 이야기의 틀은 아내 걸고 내기하기 유형의 설화로서,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 예성강(禮成江) 조에 수록된 하두강(賀頭綱)의 이야기와 닮았다. 또한 아내가 정절을 지키고 남편과 재회한다는 내용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 도미(都彌) 조의 <도미처설화>와도 상통한다. '''부부의 결합, 시련과 분리, 시련의 극복과 부부 재결합'''으로 전개되는 <일월노리푸념>의 서사 전개는 가정의 탄생과 가정의 시련, 가정의 완성이라는 가정신화의 서사구조로서 국조(國祖)의 탄생과 시련, 그리고 시련을 극복하고 국가를 창건하거나 왕으로 즉위하고 신이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나는 '''건국신화의 서사구조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 | |
− | + | <일월노리푸념>은 지상의 부부가 천상의 일신과 월신이 된다는 신화로 천상의 해와 달이 지상의 인간 남녀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천상의 태양과 태음이 지상의 물과 불, 인간의 여성과 남성과 연계된다는 <span style="background:#FFFACD">'''음양사상론적 사고'''</span>에서 형성되었다고 본다. 일월신과 인간의 남녀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신화소는 고구려 『모두루묘지(牟頭婁墓誌)』에 기록된 <주몽신화>에서부터 신라의 일월신화인 <연오랑세오녀(燕烏郞細烏女)> 그리고 전래동화로 널리 알려진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 널리 전승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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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와 평가== | ==의의와 평가== | ||
− | + | <일월노리푸념>은 가정신화이면서 동시에 무속서사시로서 관중의 흥미를 위하여 연행되는 여흥굿에서 구연된 무가이다. 남주인공 궁산이는 어리석고 무능하며 여주인공 명월각시는 현명하고 유능한 인물이다. 가정의 시련은 '''궁산이의 어리석음과 허욕'''에서 비롯되고 이를 극복하고 타개하는 것은 '''명월각시의 굳건한 정절의식과 지혜'''였다. 이러한 작품의 세계는 <span style="background:#FFFACD">'''무속사회 여성층의 의식을 반영'''</span>한 것으로 여성의 우월성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서사무가는 대부분 여성이 주인공이고 가정을 비롯하여 국가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의 위기와 역경을 여성이 타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가부장제사회에서 부자 중심의 가족관과는 다른 모권사회의 부부 중심 가족관을 보여 주는 것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 |
==일월노리푸념 발원지== | ==일월노리푸념 발원지== | ||
− | <html> <iframe src="https://www.google.com/maps/d/u/1/embed?mid=12rNYYh205CWqlgbGki23kjAKjmejKos&ehbc=2E312F" width=" | + | <html> <iframe src="https://www.google.com/maps/d/u/1/embed?mid=12rNYYh205CWqlgbGki23kjAKjmejKos&ehbc=2E312F" width="100%" height="480"></iframe> </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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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석== | ||
+ | <references/> | ||
==참고문헌== | ==참고문헌== | ||
− | < | + | [https://kiss-kstudy-com-ssl.oca.korea.ac.kr/thesis/thesis-view.asp?key=3612390 서대석. (2010). <일월노리푸념>의 신화적 성격. 구비문학연구, 31(0), 299-3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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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folkency.nfm.go.kr/kr/topic/detail/5390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일월노리푸념'] | [https://folkency.nfm.go.kr/kr/topic/detail/5390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일월노리푸념'] |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C%9D%BC%EC%9B%94%EB%85%B8%EB%A6%AC%ED%91%B8%EB%85%90&ridx=0&tot=9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일월노리푸념']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C%9D%BC%EC%9B%94%EB%85%B8%EB%A6%AC%ED%91%B8%EB%85%90&ridx=0&tot=9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일월노리푸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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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콘텐츠 분야 18분반]] [[분류:거지잔치]] [[분류:샛별같은 한국 신화 엮음집]][[분류:도깨비불]] |
2022년 12월 12일 (월) 17:03 기준 최신판
정의
평안북도 강계 지방의 일월신제라는 무속굿에서 무당이 구송하는 일월신의 유래를 이야기한 무속신화이다.
역사
<일월노리푸념>은 1933년 평안북도 강계시에 사는 전명수 무격의 구연본을 손진태가 채록하여 『청구학총』28호에 발표한 서사무가이다. [1]
줄거리
명월각시 해당금과 궁산선비는 말을 붙여 본지 삼 년 만에 가난하게 혼례를 치르고 신혼생활을 시작하였다. 궁산이는 명월각시가 너무 예뻐서 잠시도 곁을 떠나지 못하여 아무것도 벌지 못해 밥을 굶기까지 하였다. 명월각시는 궁산이에게 자신의 화상을 그려 주며 이것을 가지고 가서 나무를 해 오라고 한다. 궁산이가 화상을 나무에 걸어 놓고 쳐다보며 나무를 하는데, 광풍에 화상이 날아가 아랫녘 배 선비네 집에 가서 떨어졌다. 배 선비는 화상을 보고 명월각시의 미모를 탐하게 되고, 배에 생금을 실어 궁산이에게 가서 내기 장기를 두자고 한다. 궁산이는 명월각시를 걸고 배 선비는 생금 한 배를 걸고 내기 장기를 두었는데 궁산이가 세 판을 모두 지면서 명월각시를 배 선비에게 내어 주게 되었다. 명월각시를 빼앗기고 궁산이가 식음을 전폐한다는 소식을 들은 명월각시는 계집종을 자기 대신 변장시켜 놓고 자기는 종 노릇을 하여 헌 치마를 입고 한 다리를 절면서 물을 긷겠다고 한다. 배 선비는 명월각시가 종으로 변장한 것을 알고 물 긷는 종년을 달라고 하자, 할 수 없이 배 선비에게로 가게 된다. 명월각시는 닷새 말미를 얻어 소를 잡아 포육을 떠서 궁산이 바지와 저고리에 솜처럼 넣어 두고 바늘 한 쌈과 명주실 한 꾸러미를 옷 속에 넣어 놓는다. 그리고, 배 선비에게 부탁해서 궁산이를 데리고 가다가 어느 섬에 내려놓고 간다. 그곳에서 궁산이는 옷 속의 포육을 먹고 바늘로 낚시를 만들어 고기를 잡아 먹으며 살다가, 섬에서 만난 학의 새끼를 먹여 살리고 어미 학의 도움으로 학을 타고 섬에서 나와 거지가 되어 다닌다. 한편, 명월각시가 배 선비와 살면서 웃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자 배 선비가 소원을 묻는다. 명월각시는 배 선비에게 거지를 위한 잔치를 사흘만 열어 달라고 부탁한다. 궁산이는 거지를 위한 잔치에 참여하였지만 자리를 잘못 잡아 사흘을 못 얻어먹고 팔자 한탄을 하였다. 그런데, 명월각시가 이를 알고 따로 상을 차려 그를 먹인 후 구슬옷을 내어 놓으며 이 옷의 깃을 잡아 고들을 들추어 입으면 내 낭군이라고 말한다. 궁산이가 이 구슬옷을 입고 백운 중천에 높이 떴다가 내려오자, 배 선비도 따라서 구슬옷을 입고 백운 중천에 올라갔으나 벗는 재주를 배우지 못하여 내려오지 못하고 거기서 죽어 솔개가 된다. 궁산이와 명월각시는 다시 만나 살다가 죽은 뒤 그들의 혼령이 일월신이 된다.
분석
궁산선비와 명월각시가 부부로 결합하고 궁산이가 내기 장기에 져서 부인을 배 선비에게 빼앗겼다가 다시 만나 재결합한다는 내용은 <아내의 초상화>, <새신랑>, <우렁각시> 등 여러 가지 민담 유형과 유사하다. 그러나 전체 이야기의 틀은 아내 걸고 내기하기 유형의 설화로서,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 예성강(禮成江) 조에 수록된 하두강(賀頭綱)의 이야기와 닮았다. 또한 아내가 정절을 지키고 남편과 재회한다는 내용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 도미(都彌) 조의 <도미처설화>와도 상통한다. 부부의 결합, 시련과 분리, 시련의 극복과 부부 재결합으로 전개되는 <일월노리푸념>의 서사 전개는 가정의 탄생과 가정의 시련, 가정의 완성이라는 가정신화의 서사구조로서 국조(國祖)의 탄생과 시련, 그리고 시련을 극복하고 국가를 창건하거나 왕으로 즉위하고 신이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나는 건국신화의 서사구조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
<일월노리푸념>은 지상의 부부가 천상의 일신과 월신이 된다는 신화로 천상의 해와 달이 지상의 인간 남녀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천상의 태양과 태음이 지상의 물과 불, 인간의 여성과 남성과 연계된다는 음양사상론적 사고에서 형성되었다고 본다. 일월신과 인간의 남녀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신화소는 고구려 『모두루묘지(牟頭婁墓誌)』에 기록된 <주몽신화>에서부터 신라의 일월신화인 <연오랑세오녀(燕烏郞細烏女)> 그리고 전래동화로 널리 알려진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 널리 전승된다.
의의와 평가
<일월노리푸념>은 가정신화이면서 동시에 무속서사시로서 관중의 흥미를 위하여 연행되는 여흥굿에서 구연된 무가이다. 남주인공 궁산이는 어리석고 무능하며 여주인공 명월각시는 현명하고 유능한 인물이다. 가정의 시련은 궁산이의 어리석음과 허욕에서 비롯되고 이를 극복하고 타개하는 것은 명월각시의 굳건한 정절의식과 지혜였다. 이러한 작품의 세계는 무속사회 여성층의 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여성의 우월성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서사무가는 대부분 여성이 주인공이고 가정을 비롯하여 국가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의 위기와 역경을 여성이 타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가부장제사회에서 부자 중심의 가족관과는 다른 모권사회의 부부 중심 가족관을 보여 주는 것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일월노리푸념 발원지
주석
- ↑ <돈전풀이>는 함흥에서 월남하여 부산에 거주하는 강춘옥 무녀의 보유자료를 1965년 임석재와 장주근이 채록하여 『중요무형문화재지정자료(관북지방무가)』에 수록한 자료이며, <궁상이굿>은 김태곤이 1966년 함흥에서 월남한 이고분의 보유자료를 채록하여 『한국무가집』3에 수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