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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불교 잡지 <유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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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용운은 1910년대에 조선불교의 전통을 수호하기 위한 운동을 이끌었고, 『조선불교유신론』(1913), 『불교대전』(1914), 『정선강의 채근담』(1917) 등의 저술을 발표했다. 조선불교의 지도자로서 개혁을 꿈꿨던 그이기에 많은 불교 청년이 그를 따랐고, 한용운은 젊은 세대를 위한 올바른 수양 담론의 장으로서 『유심』을 창간하였다. 이후 한용운은 3.1운동에 민족 대표로 참여했고, 젊은 세대의 정신적 지주로서 자리를 잡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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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편집 겸 발행인은 한용운(韓龍雲)이다. 집필진은 대부분 불교도이며 한용운, 최린, 최남선, 유근, 이광종, 이능우, 김남천, 강도봉, 서광전, 김문연, 임규, 박한영, 백용성, 권상로, 현상윤, 홍남표 등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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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유심』은 특별한 편목이나 분류 없이, '수양'이라는 주제 아래 사설이나 문학 작품 등으로 구성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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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용운은 「조선 청년과 수양」이라는 글에서 물질문명에 휩쓸려 방황하는 조선 청년들에게 행동 규범으로서 ‘마음의 수양’을 제시하였다. 창간호의 가장 앞에 실린 글인 만큼 『유심』이 지향하는 목표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유심』은 청년들의 문예 작품 발표의 장으로서도 의미를 지닌다. 그중에는 나중에 아동문학가로 알려질 방정환(方定煥)도 있었고, 김법린, 이영재 등 신진 불교 청년들도 확인된다. 『유심』은 젊은 인재들이 자신의 꿈을 키우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처럼 『유심』은 조선 청년의 각성과 실천을 추구했고, 청년들로부터 호응을 이끌어 냈던 잡지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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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사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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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div style="text-align:center">불교 잡지 유심2호 표지</div>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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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참고문헌 == | ||
| + | * [https://buddhaland.dongguk.edu/bulVoca/view?dataId=KBDI0002080 유심:불교문화포털] | ||
| + |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1626 유심-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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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분류:감자]] | ||
2025년 6월 19일 (목) 21:06 기준 최신판
| 사진 | |
|---|---|
| 한글 | 유심 |
| 한자 | 惟心 |
| 판본 | 활자본 |
| 시대 | 일제강점기 |
| 간행연도 | 1918년 |
| 간행처 | 경성 |
만해 한용운이 유심사에서 조선 청년들을 계몽하기 위해 간행한 잡지
내용
만해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이 청년들의 수양을 독려하고 계몽하기 위해 간행한 수양 잡지이다.
1918년 9월에 창간되어 1918년 12월에 제3호로 종간되었다. 1910년대 불교 잡지들은 대부분 기관지 형태로 간행되었는데, 『유심』은 한용운 개인의 의지로 발간한 잡지라는 점이 특징이다. 게다가 청년 세대를 고려한 잡지라는 점에서 올바른 수양과 사고를 통해 청년들이 새 시대의 주역이 되기를 희망하는 한용운의 기획 의도를 엿볼 수 있다.
한용운은 1910년대에 조선불교의 전통을 수호하기 위한 운동을 이끌었고, 『조선불교유신론』(1913), 『불교대전』(1914), 『정선강의 채근담』(1917) 등의 저술을 발표했다. 조선불교의 지도자로서 개혁을 꿈꿨던 그이기에 많은 불교 청년이 그를 따랐고, 한용운은 젊은 세대를 위한 올바른 수양 담론의 장으로서 『유심』을 창간하였다. 이후 한용운은 3.1운동에 민족 대표로 참여했고, 젊은 세대의 정신적 지주로서 자리를 잡았다.
편집 겸 발행인은 한용운(韓龍雲)이다. 집필진은 대부분 불교도이며 한용운, 최린, 최남선, 유근, 이광종, 이능우, 김남천, 강도봉, 서광전, 김문연, 임규, 박한영, 백용성, 권상로, 현상윤, 홍남표 등이다.
『유심』은 특별한 편목이나 분류 없이, '수양'이라는 주제 아래 사설이나 문학 작품 등으로 구성되었다.
한용운은 「조선 청년과 수양」이라는 글에서 물질문명에 휩쓸려 방황하는 조선 청년들에게 행동 규범으로서 ‘마음의 수양’을 제시하였다. 창간호의 가장 앞에 실린 글인 만큼 『유심』이 지향하는 목표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유심』은 청년들의 문예 작품 발표의 장으로서도 의미를 지닌다. 그중에는 나중에 아동문학가로 알려질 방정환(方定煥)도 있었고, 김법린, 이영재 등 신진 불교 청년들도 확인된다. 『유심』은 젊은 인재들이 자신의 꿈을 키우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처럼 『유심』은 조선 청년의 각성과 실천을 추구했고, 청년들로부터 호응을 이끌어 냈던 잡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