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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nocutnews.co.kr/news/4839624 노컷뉴스, 2017, 「문화재청장 "덕종어보 전시 계속, 환수에 치중해 실수했다"」] | [https://www.nocutnews.co.kr/news/4839624 노컷뉴스, 2017, 「문화재청장 "덕종어보 전시 계속, 환수에 치중해 실수했다"」] | ||
− |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428206 | + |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428206 헤럴드경제, 2017, 「덕종어보 ‘짝퉁’ 논란…재제작된 어보만 28개, 모두 ‘가짜’인가」] |
− | [https://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5040115154901529 | + | [https://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5040115154901529 아시아경제, 2015, 「美 컬렉터 기증 '덕종어보'의 귀환…"반환 모범사례"」] |
2024년 12월 21일 (토) 00:50 기준 최신판
목차
기본정보
환수일자 | 2015.04 |
환수주체 | 문화재청[1] |
환수경로 | 기증 (미국) |
제작시기 | 일제강점기, 1924년 |
형태 | 도장 |
현 소장처 | 국립고궁박물관[2] |
성종 시기에 만들었던 도장인 덕종어보를 바탕으로 일제강점기에 다시 제작한 문화유산이다.
외관
형태
4.45kg의 이 도장은 황동 위에 금 도금이 되어 있다. 거북 모양의 손잡이가 특징이며 거북의 형상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조선 왕실의 권위를 나타낸다.
내용
덕종어보는 1471년 조선 제9대 왕인 성종이 세자 신분으로 요절한 아버지 의경세자를 온문의경왕(溫文懿敬王)으로 추존하고 덕종이라는 묘호를 정하면서 제작한 도장이다. 현재 남아있는 덕종어보는 영녕전 덕종실에 보관되던 어보를 1924년 종묘에 든 도둑들에 의해 분실한 후, 순종의 명령으로 조선미술품제작소에서 1924년 다시 제작한 것이다.
유출과 환수 스토리
유출 경위
덕종어보는 1943년까지는 종묘 영녕전 덕종실에 남아있었으나, 이후 알 수 없는 경로로 미국(USA)으로 반출된다. 그러다 1962년 아시아 미술품 수집가였던 토마스 스팀슨(Thomas D. Stimson) 여사가 미국 뉴욕에서, 반출된 덕종어보를 구입한 후 이듬해 2월 시애틀 미술관에 기증했고 이후 시애틀 미술관이 계속해서 소장하고 있었다.
환수 과정
정보를 입수한 문화재청은 2013년 7월부터 조사에 착수하였으며 2014년 7월 시애틀 미술관과의 협상을 시작했다. 시애틀 미술관은 한국 정부의 반환 요청에 논의를 거쳐 만장일치로 반환에 합의하였고, 덕종어보는 2015년 4월,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2016년 말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간 문화재청은 이 어보가 1417년에 만들어진 원본이라고 생각했으나, 연구를 통해 1924년 다시 만들어진 것이라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에 국립고궁박물관은 2017년 8월 열린 특별전 간담회에서 이 어보가 1924년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발표했으나 관련 정보를 바로 알리지 않은 것, 원본과 모조품을 구분하지 못한 것 등으로 비판과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어보가 분실된 후 순종의 지시로 다시 만들어졌고, 당시에 정식 어보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들어 이 어보가 단순한 모조품이 아닌 공식 어보로서 진품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해명하였다.
의미와 중요성
덕종어보는 미국으로 유출된 문화유산이 한국으로 돌아온 세 번째 사례이다. 앞선 두 사례는 유출 과정의 불법성을 바탕으로, 수사를 통한 압수의 형식으로 환수한 것이었다. 그러나 덕종어보의 사례는 그와 달리 자발적인 기증의 형식이었다는 것이 특별하다. 이에 대해 나선화 당시 문화재청장은 "이제 한국과 미국은 문화재 환수에 있어서 합법적인 수사공조에 의한 반환과 함께 아름다운 기증으로 반환되는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다”면서 “이는 앞으로 유럽과 일본(으로 유출된 한국문화재 반환)에서도 모범 사례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환수 후의 활용과 보존
보존
국립고궁박불관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다.
전시와 연구
1924년 5월 2일 매일신보의 "조선미술품제작소에 제작을 명해 어보를 새로 만들어 위안제를 지내고 종묘에 바쳤다"라는 기사를 바탕으로 덕종어보가 원본이 아닐 가능성이 제기 되었다. 표면 성분 분석 등의 연구 결과, 아연 구리 등의 덕종어보 구성 성분이 15세기 만들어졌던 다른 어보의 구성 성분과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해당 어보가 1924년에 다시 만들어진 어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원본이 아니라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기에 여전히 국립고궁박물관의 '국새와 어보', '다시 찾은 조선왕실의 어보' 특별전[3] 등 다양한 전시를 통해 덕종어보를 만나볼 수 있다.
관련 에피소드
토마스 스팀슨 여사((Mrs. Thomas D. Stimson)
토마스 스팀슨 여사는 1931년 남편이 사고로 사망한 후, 남편을 기념하는 뜻으로 약 30년간 여러 미술품을 수집해 미술관에 기증하였고 덕종어보도 그 중 하나였다. 그의 외손자인 프랭크 베일리(Mr. Frank S. Bayley)씨에 따르면 스팀슨 여사는 덕종어보를 한국에서 온 대사라고 여기며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원본은 어디에?
1924년 종묘에 든 도둑들이 훔쳐간 덕종어보의 원본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 도둑들은 덕종어보, 예종어보 등 5개의 어보를 훔쳐 달아났다고 한다.
참고 문헌
노컷뉴스, 2017, 「문화재청장 "덕종어보 전시 계속, 환수에 치중해 실수했다"」
헤럴드경제, 2017, 「덕종어보 ‘짝퉁’ 논란…재제작된 어보만 28개, 모두 ‘가짜’인가」
아시아경제, 2015, 「美 컬렉터 기증 '덕종어보'의 귀환…"반환 모범사례"」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