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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태 || 서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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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양봉 교육교재로 독일 마그데부르크 출신 카니시우스 퀴겔겐(한국명 구걸근, Canisius Kugelgen, 1884~1964) 신부가 서양 양봉 기술을 알려주기 위해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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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양봉 교육교재로 독일 마그데부르크 출신 카니시우스 퀴겔겐(한국명 구걸근, Canisius Kugelgen, 1884~1964) 신부가 서양 양봉 기술을 알려주기 위해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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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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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책받침 형태를 하고 있으며, 모죽임하고 정갈한 서체의 청화로 망자의 생애를 서술하여 사료적 가치가 있고 당시 도자 양상 이해에 도움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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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책
  
 
====내용====
 
====내용====
묘지(墓誌)란 고인의 생애와 성품, 가족관계 등의 행적을 적어 무덤에 함께 묻은 돌이나 도판(陶板)입니다. 박정양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양주 조씨의 생애를 도판(陶板) 1장에 122자로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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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로 사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당시 수도원에서 진행하던 서양의 양봉 기술에 대한 강습 내용 중 핵심을 간추려 한글로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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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cc3333">유출과 환수 스토리</font>===
 
===<font color="#cc3333">유출과 환수 스토리</font>===
  
'''1. 유출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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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출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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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요지』출간 직후 독일로 보내진 원본들 중 일부를 [[독일(GERMANY)]] 뷔르츠부르크(Würzburg) 인근 뮌스터슈바르자흐(Abtei Münsterschwarzach) 수도원에서 소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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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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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왜관수도원 소속 독일인 선교사 바르톨로메오 헨네켄(한국명 현익현, Bartholomaeus Henneken) 신부가 『양봉요지』를 독일의 뮌스터슈바르자흐(Abtei Münsterschwarzach)수도원 도서관에서 찾아냈다. 이후 이 책의 환수에 대해 두 수도원간에 논의가 시작되었으며, 이후 왜관수도원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칠곡군의 협업을 통해 영구대여 방식으로 돌려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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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와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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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기관의 협업으로 성사되어 국외 문화재 환수의 새로운 모범 사례로 조명 받는 것은 물론, 독일 선교사들이 동북아시아에서 했던 선교활동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 받는다.
  
양주 조씨는 박정양과 1남 2녀를 두었으며, 1892년 사망과 함께 경기도 수원에 묻혔습니다. 이후 1921년에 박정양의 묘소에 합장되었으며, 묘지의 상태로 미루어 볼 때, 합장 이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유실되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2. 환수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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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대학에서 한국사를 전공한 피터슨 교수는 이 묘지를 우연히 구입해 보관해왔습니다. 지난 2022년 7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Frog Outside the Well'''에서 이 묘지를 처음 소개하다 후손에게 돌려줄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 채널을 시청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사무소 직원이 피터슨 교수와 한국에 있는 박정양 후손 측에 연락하면서 기증이 약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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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cc3333">환수 후의 활용과 보존</font>===
  
===<font color="#cc3333">전시와 연구</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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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양측의 동의하에 묘지를 임시로 기탁 받아 2022년 10월 주미대한제국공사관(워싱턴 D.C. 소재)에서 개최된 한미수교 140주년 기념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 현지 특별전에서 일반에 미리 공개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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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수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소장, 보존하고 있다.
  
당시 묘지를 관람한 관람객들은 “박정양 공사가 135년 전 초대 공사로 워싱턴 D.C.에서 생활했었는데, 박정양 공사 부인의 묘지를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전시실에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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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와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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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수가 이루어지기 전부터 칠곡군이 책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고, 2015년 칠곡군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현대어 해제본과 복사본을 함께 묶어 출판하였다. 환수 후 2018년에는 3월 칠곡군이 개관한 꿀벌나라 테마공원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지난 9월에 전시를 마친 후 묘지는 서울에 소재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보관되다가 이번 전달식을 통해 무사히 후손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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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cc3333">관련 에피소드</font>===
 
===<font color="#cc3333">관련 에피소드</font>===
  
브리검 영 대학에서 아시아 및 인류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학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은 '''피터슨''' 교수는 미국 내 한국학 권위자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피터슨 교수는 후손에게 묘지를 돌려줄 있어 기쁘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그는 전날 서울 마포구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열린 기증식에 직접 참석해 평소 묘지를 '미시즈 조'(Mrs. Cho)라고 부르며 아껴왔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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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군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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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수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준 칠곡군은 우리나라 유일의 양봉 특구<ref>이 점이 칠곡군 지자체가 양봉요지 환수에 적극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ref>이고 아카시아 나무 최대 군락지로 매년 양봉 관련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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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왜관이 위치하여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 뿐만 아니라, 독일 계열 수도원인 성 베네딕토 왜관 수도원의 영향으로 독일 문화<ref>칠곡군이 독일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사례로는 '''분도 소시지'''가 있는데, 20세기 초 독일에서 온 선교사들이 먹던 소시지가 현대에 들어 칠곡군의 대표적인 특산물이 된 것이다.</ref>도 엿볼 수 있는 독특한 지역이다.<ref>이로 인해 외제차가 흔하지 않던 과거에도 칠곡군에는 도요타, 벤츠 등의 차량을 쉽게 볼 있었다고 한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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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사 바르톨로메오 헨네켄(한국명 현익현, Bartholomaeus Henne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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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수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왜관수도원 소속 독일인 선교사 바르톨로메오 헨네켄은 양봉요지에 대한 조사와 환수를 위해 휴가 기간까지 이용해가며 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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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cc3333">참고 문헌</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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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i.kr/news/articleView.html?idxno=913943 매일일보, 2022, 「칠곡군, 국내 최초 양봉교재 ‘양봉요지’ 왜관수도원 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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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80409.010110731570001 영남일보, 2018, 「우리나라 최초 양봉교재‘양봉요지’ 꿀벌나라 테마공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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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atholictimes.org/289898 가톨릭신문, 2018,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한국 첫 양봉교재 「양봉요지」 100년 만에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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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cc3333">외부 링크</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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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sb.kr/ 성 베네딕도 왜관 수도원]
  
올해 1월에는 종중회장이자 박정양의 증손인 박찬수 고려대 교수와 직접 만나 박정양과 조씨가 함께 묻힌 무덤을 방문하는 영상을 올리며 '이 순간을 꿈꿔보지도 못했다'고 감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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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hilgok.go.kr/main.do 칠곡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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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overseaschf.or.kr/okchf/index.do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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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관계자는 "평소 집에서 보관하며 '미시즈 조'가 어떤지 꼼꼼히 살피셨다고 합니다. 기증식 말미에 '마지막으로 만져봐도 되냐'고 말씀하시며 한참을 쳐다보셨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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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푸루리]]

2024년 12월 21일 (토) 00:46 기준 최신판

기본정보

양봉요지

환수일자 2018.1.27
환수주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환수경로 영구대여 (독일)
제작시기 일제강점기, 1918년
형태 서책
현 소장처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우리나라 최초의 양봉 교육교재로 독일 마그데부르크 출신 카니시우스 퀴겔겐(한국명 구걸근, Canisius Kugelgen, 1884~1964) 신부가 서양 양봉 기술을 알려주기 위해 저술하였다.



외관

형태

서책

내용

교재로 사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당시 수도원에서 진행하던 서양의 양봉 기술에 대한 강습 내용 중 핵심을 간추려 한글로 작성하였다.



유출과 환수 스토리

유출 경위

『양봉요지』출간 직후 독일로 보내진 원본들 중 일부를 독일(GERMANY) 뷔르츠부르크(Würzburg) 인근 뮌스터슈바르자흐(Abtei Münsterschwarzach) 수도원에서 소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환수 과정

2014년, 왜관수도원 소속 독일인 선교사 바르톨로메오 헨네켄(한국명 현익현, Bartholomaeus Henneken) 신부가 『양봉요지』를 독일의 뮌스터슈바르자흐(Abtei Münsterschwarzach)수도원 도서관에서 찾아냈다. 이후 이 책의 환수에 대해 두 수도원간에 논의가 시작되었으며, 이후 왜관수도원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칠곡군의 협업을 통해 영구대여 방식으로 돌려 받게 되었다.

의미와 중요성

다양한 기관의 협업으로 성사되어 국외 문화재 환수의 새로운 모범 사례로 조명 받는 것은 물론, 독일 선교사들이 동북아시아에서 했던 선교활동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 받는다.



환수 후의 활용과 보존

보존

환수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소장, 보존하고 있다.

전시와 연구

환수가 이루어지기 전부터 칠곡군이 책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고, 2015년 칠곡군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현대어 해제본과 복사본을 함께 묶어 출판하였다. 환수 후 2018년에는 3월 칠곡군이 개관한 꿀벌나라 테마공원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관련 에피소드

칠곡군에 대해서

환수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준 칠곡군은 우리나라 유일의 양봉 특구[1]이고 아카시아 나무 최대 군락지로 매년 양봉 관련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과거에 왜관이 위치하여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 뿐만 아니라, 독일 계열 수도원인 성 베네딕토 왜관 수도원의 영향으로 독일 문화[2]도 엿볼 수 있는 독특한 지역이다.[3]

선교사 바르톨로메오 헨네켄(한국명 현익현, Bartholomaeus Henneken)

환수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왜관수도원 소속 독일인 선교사 바르톨로메오 헨네켄은 양봉요지에 대한 조사와 환수를 위해 휴가 기간까지 이용해가며 일했다고 한다.



참고 문헌

매일일보, 2022, 「칠곡군, 국내 최초 양봉교재 ‘양봉요지’ 왜관수도원 반환」

영남일보, 2018, 「우리나라 최초 양봉교재‘양봉요지’ 꿀벌나라 테마공원 전시」

가톨릭신문, 2018,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한국 첫 양봉교재 「양봉요지」 100년 만에 귀환」



외부 링크

성 베네딕도 왜관 수도원

칠곡군청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1. 이 점이 칠곡군 지자체가 양봉요지 환수에 적극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2. 칠곡군이 독일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사례로는 분도 소시지가 있는데, 20세기 초 독일에서 온 선교사들이 먹던 소시지가 현대에 들어 칠곡군의 대표적인 특산물이 된 것이다.
  3. 이로 인해 외제차가 흔하지 않던 과거에도 칠곡군에는 도요타, 벤츠 등의 차량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