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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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가상의 유토피아적인 도시 오멜라스의 행복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어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오멜라스는 배우 번영하고 이상적인 도시로 묘사되나, 그 도시의 행복은 역설적이게도 지하에 갇혀서 나가지 못하고 고통받는 어떤 아이의 희생이 있어야만 성립되는 행복이었다. 즉, 오멜라스가 지상낙원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아이가 계속 지하실에서 고통받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그 아이를 조금이나마 도와줄 경우 오멜라스가 누리는 행복과 번영은 바로 무너지고, 유토피아는 없어진다. 오멜라스 주민들은 8~12살 즈음에 그 사실을 듣게 되고, 자신들이 누리는 모든 행복과 풍요로움은 처참한 처지에 놓인 그 아이의 희생 덕분임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그 광경을 보고 분노하며 아이에게 동정심을 느끼지만, 그 아이를 풀어줄 경우 도시의 번영이 무너져버리므로, 주민들 대부분은 여러 이유를 들며 그 아이의 희생을 수긍해버린다. 아이의 희생에 눈을 감고 풍요로운 현실에 안주하며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몇몇은 오멜라스를 넘어 어디론가 떠나고 다시는 오멜라스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가상의 유토피아적인 도시 오멜라스의 행복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어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오멜라스는 배우 번영하고 이상적인 도시로 묘사되나, 그 도시의 행복은 역설적이게도 지하에 갇혀서 나가지 못하고 고통받는 어떤 아이의 희생이 있어야만 성립되는 행복이었다. 즉, 오멜라스가 지상낙원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아이가 계속 지하실에서 고통받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그 아이를 조금이나마 도와줄 경우 오멜라스가 누리는 행복과 번영은 바로 무너지고, 유토피아는 없어진다. 오멜라스 주민들은 8~12살 즈음에 그 사실을 듣게 되고, 자신들이 누리는 모든 행복과 풍요로움은 처참한 처지에 놓인 그 아이의 희생 덕분임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그 광경을 보고 분노하며 아이에게 동정심을 느끼지만, 그 아이를 풀어줄 경우 도시의 번영이 무너져버리므로, 주민들 대부분은 여러 이유를 들며 그 아이의 희생을 수긍해버린다. 아이의 희생에 눈을 감고 풍요로운 현실에 안주하며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몇몇은 오멜라스를 넘어 어디론가 떠나고 다시는 오멜라스로 돌아오지 않았다.
 
==<div style="background-color:#99cccc; margin: 0; border: 3px solid #000000;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주제'''==
 
==<div style="background-color:#99cccc; margin: 0; border: 3px solid #000000;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주제'''==
==<div style="background-color:#99cccc; margin: 0; border: 3px solid #000000; padding: 3px ; border-radius:100px">'''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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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를 희생시켜서 다수가 행복을 얻는 것은 옳은 것인가?" "현대의 미국의 번영이 지구 반대편인가의 어느 나라의 전쟁과 기아 상황으로 지탱되고 있다고 한다면 어떨까?" 라는 작가의 호기심과 궁금증에서 이 소설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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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주제는 '절대 다수의 행복을 위하여 극히 소수의 무고한 이의 희생을 용인할 수 있는가' 에 있다. 처참한 처지의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오멜라스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오멜라스에 사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비록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큰 힘이 없더라도,  남들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것과 문제적 의식을 계속 갖고 있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작가는 현실을 바꾸기 힘든 것을 앎에도 어둠으로 들어가며 부딪혀 저항하려는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이 존재하기를 소망한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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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1일 (월) 21:50 기준 최신판

개요

바람의 열두 방향.jpg

어슐러 K. 르 귄이 1973년 쓴 『바람의 열두 방향』에 수록된 판타지 단편소설이다. 원제는 The Ones Who Walk Away from Omelas이다.

줄거리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가상의 유토피아적인 도시 오멜라스의 행복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어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오멜라스는 배우 번영하고 이상적인 도시로 묘사되나, 그 도시의 행복은 역설적이게도 지하에 갇혀서 나가지 못하고 고통받는 어떤 아이의 희생이 있어야만 성립되는 행복이었다. 즉, 오멜라스가 지상낙원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아이가 계속 지하실에서 고통받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그 아이를 조금이나마 도와줄 경우 오멜라스가 누리는 행복과 번영은 바로 무너지고, 유토피아는 없어진다. 오멜라스 주민들은 8~12살 즈음에 그 사실을 듣게 되고, 자신들이 누리는 모든 행복과 풍요로움은 처참한 처지에 놓인 그 아이의 희생 덕분임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그 광경을 보고 분노하며 아이에게 동정심을 느끼지만, 그 아이를 풀어줄 경우 도시의 번영이 무너져버리므로, 주민들 대부분은 여러 이유를 들며 그 아이의 희생을 수긍해버린다. 아이의 희생에 눈을 감고 풍요로운 현실에 안주하며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몇몇은 오멜라스를 넘어 어디론가 떠나고 다시는 오멜라스로 돌아오지 않았다.

주제

"소수를 희생시켜서 다수가 행복을 얻는 것은 옳은 것인가?" "현대의 미국의 번영이 지구 반대편인가의 어느 나라의 전쟁과 기아 상황으로 지탱되고 있다고 한다면 어떨까?" 라는 작가의 호기심과 궁금증에서 이 소설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의 주제는 '절대 다수의 행복을 위하여 극히 소수의 무고한 이의 희생을 용인할 수 있는가' 에 있다. 처참한 처지의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오멜라스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오멜라스에 사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비록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큰 힘이 없더라도, 남들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것과 문제적 의식을 계속 갖고 있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작가는 현실을 바꾸기 힘든 것을 앎에도 어둠으로 들어가며 부딪혀 저항하려는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이 존재하기를 소망한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보여준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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