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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탑은 1925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완전 해체·보수되었는데, 이때 탑에서 불상을 포함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는 짧은 기록이 있으나 탑의 수리에 대한 내용이나 사리장엄구에 대한 보고서가 간행되지 않았다. 이후 1972년의 옥개석 위 돌난간의 일부 보수가 있었으며, 2008년 12월부터 2009년 12월에 걸쳐 상륜부의 일부 해체수리와 일제 강점기에 사용된 시멘트 모르타르를 제거하고 균열부를 메우는 등의 대대적인 수리가 이루어졌다.<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943</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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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탑은 1925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완전 해체·보수되었는데, 이때 탑에서 불상을 포함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는 짧은 기록이 있으나 탑의 수리에 대한 내용이나 사리장엄구에 대한 보고서가 간행되지 않았다. 이후 1972년의 옥개석 위 돌난간의 일부 보수가 있었으며, 2008년 12월부터 2009년 12월에 걸쳐 상륜부의 일부 해체수리와 일제 강점기에 사용된 시멘트 모르타르를 제거하고 균열부를 메우는 등의 대대적인 수리가 이루어졌다.<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943</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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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9일 (토) 14:17 기준 최신판

대한민국 국보 제 20호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건축물 정보

개요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이형 석조 불탑이다. 탑이 건립된 시기는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으로 추측된다. 목조건축의 복잡한 구조를 참신한 발상을 통해 산만하지 않게 표현한 뛰어난 작품으로, 4각, 8각,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있게 구성한 점, 각 부분의 길이·너비·두께를 일정하게 통일시킨 점 등은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특징

다보탑은 불국사 3층석탑과 함께 나란히 서 있다. 다보탑과 불국사 3층 석탑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견보탑품(見寶塔品)」에 근거하여 건립되었다고 한다. 즉 다보여래가 『법화경』을 설법하는 석가모니를 찬양하기 위해 보탑의 형상으로 솟아나 공중에 머물며 찬양한 후, 탑내의 자리를 반으로 나누어 나란히 앉았다는 내용이다.

이 석탑은 이중기단에 삼층의 탑신을 지닌 신라의 전형석탑과 전혀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어 이형 석탑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탑의 층수에 대하여는 사각의 옥개석, 팔각의 옥개석을 사이에 두고 사각, 팔각난간을 별도의 층으로 해석하는 등 여러 가지 해석으로 2층설, 3층설, 4층설 등 다양하다. 기단은 방형 평면을 기본으로 사방에 계단을 두어 전체적인 평면이 ‘亞’자 모양을 하고 있다. 다보탑은 기단부에 나타나는 사방의 계단, 곳곳에 보이는 사각과 팔간의 난간, 또 그 내부에 표현된 감실은 『법화경』에서 이야기하는 칠보탑(七寶塔)의 형태를 그대로 현실에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경전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현실공간의 건축으로 승화한 점은 이 탑이 지니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계단에는 본래 난간이 가설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계단 윗부분 갑석 모서리에는 4마리의 사자가 배치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1마리만[1] 남아 있다.[2]


의의

불국사 다보탑은 조형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통일신라 석조미술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다보탑은 석가여래와 다보여래의 만남을 현실공간에 탑으로 재현했을 뿐 아니라 경전에서 말하는 탑의 형태를 독창적 예술로 승화시킨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여담

이 탑은 1925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완전 해체·보수되었는데, 이때 탑에서 불상을 포함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는 짧은 기록이 있으나 탑의 수리에 대한 내용이나 사리장엄구에 대한 보고서가 간행되지 않았다. 이후 1972년의 옥개석 위 돌난간의 일부 보수가 있었으며, 2008년 12월부터 2009년 12월에 걸쳐 상륜부의 일부 해체수리와 일제 강점기에 사용된 시멘트 모르타르를 제거하고 균열부를 메우는 등의 대대적인 수리가 이루어졌다.[3]

각주

  1. 1925년경에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였는데,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탑 속에 두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버려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었다.
  2.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943
  3.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