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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시인의 시 '절정'에 대한 서술이 이루어지는 페이지이다.
 
[[이육사]] 시인의 시 '절정'에 대한 서술이 이루어지는 페이지이다.
1940년 1월호 『문장(文章)』지에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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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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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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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 오다.<br/>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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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br/>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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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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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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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역경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극복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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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의 상징적인 시어들이 다수 활용된 작품이다.<br/>
 
고도의 상징적인 시어들이 다수 활용된 작품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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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채찍'은 일제의 식민지 통치 속에서 민족이 겪는 여러 어려움과 고난들을 상징하는 시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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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채찍'은 일제의 식민지 통치 속에서 민족이 겪는 여러 어려움과 고난들을 상징하는 시어다. <br/>
작품이 발표된 40년 이전까지 이육사 시인이 수차례의 투옥 생활을 반복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고려할 때, '채찍에 갈겨'라는 표현은 일제에 쫓기는 독립투사의 현실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ref>신웅순. (2003). 이육사의 시인 정신 - 「절정」과 「교목」을 중심으로. 새국어교육, 66, 401-417.</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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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발표된 40년 이전까지 이육사 시인이 수차례의 투옥 생활을 반복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고려할 때, '채찍에 갈겨'라는 표현은 일제에 쫓기는 독립투사의 현실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일제에 의해 심한 고문을 당했던 이육사 시인의 상황을 뜻한다고도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시인은 1934년 일제의 조선군관학교 출신과 검거 시 피검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ref>신웅순. (2003). 이육사의 시인 정신 - 「절정」과 「교목」을 중심으로. 새국어교육, 66, 401-417.</ref><br/>
화자에게 있어서 '북방'은 자의로 오게 된 곳이 아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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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에게 있어서 '북방'은 자의로 오게 된 곳이 아니다. 또한 역사적 사실와 함께 생각해보면, '북방으로 휩쓸려'왔다는 구절은, 헌병과 고등경찰에 의해 조선으로부터 강제 추방을 당했던 당시의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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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은 1930-40년대의 '만주' 지역을 의미한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당시 조선총독부의 이주 정책으로 만주 지역에는 조선인 이주민들이 많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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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에서 화자의 성찰적 의지가 드러난다. <br/>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에서 화자의 성찰적 의지가 드러난다. <br/>
'무지개'는 독립투사로서의 절대적이고 숭고한 굳은 의지를 뜻한다. '강철로 된' 무지개이기 때문에, 강인한 이미지가 더욱 강화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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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는 독립투사로서의 절대적이고 숭고한 굳은 의지, 고고한 정신세계를 뜻한다. '강철로 된' 무지개이기 때문에, 강인한 이미지가 더욱 강화된다.<br/>
1942년 이육사의 수필에서 무지개라는 소재가 긍정적인 속성을 드러냈음을 고려하면, 1940년 발표된 작품인 절정에서의 '무지개' 또한 긍정적인 속성의 시어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측 가능하다.<ref>류순태. (2013). 이육사 시 「절정」의 비극적 실존 의식과 저항성 연구. 우리문학연구, 38, 387-418.</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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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이육사]]의 수필에서 무지개라는 소재가 긍정적인 속성을 드러냈음을 고려하면, 1940년 발표된 작품인 절정에서의 '무지개' 또한 긍정적인 속성의 시어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측 가능하다.<ref>류순태. (2013). 이육사 시 「절정」의 비극적 실존 의식과 저항성 연구. 우리문학연구, 38, 387-418.</ref> 이러한 부분은 이육사 시인이 갖고 있던, 지조와 절개를 중요시하는 전통적인 [[선비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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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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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된 1940년도는 한국인의 민족성과 고유한 문화를 말살하려 시도했던 일제의 [[민족말살통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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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
 
==의의==
정치적 의지와 시가 융합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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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의지와 시가 융합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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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시인은 문예가 정치적인 운동이 될 수 있다는 사상을 가지고, 예술과 정치가 결합된 문학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천적 행위로서의 창작 활동에 중점을 두었는데, '절정'은 이러한 그의 사상이 강하게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ref>조은주. (2017). 이육사의 문학관과 ‘광야(曠野)’의 사상성 - 행동주의, 니체주의를 중심으로 -. 한국문학과 예술, 22, 153-194.</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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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폼폼푸딩🍮]] [[분류:이육사]] [[분류:이육사의 세계를 알아보조]] [[분류:콘텐츠 분야 7분반]] [[분류:민족문학]]

2023년 12월 7일 (목) 19:32 기준 최신판

개요

이육사 시인의 시 '절정'에 대한 서술이 이루어지는 페이지이다. 1940년 1월호 『문장』지에 발표되었다.

.


본문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 오다.
​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주제

현실의 역경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극복의 의지


해설

의지적이고, 강렬하고 결단적인 어조가 드러난다. 고도의 상징적인 시어들이 다수 활용된 작품이다.


  • 1연

'매운', '채찍'은 일제의 식민지 통치 속에서 민족이 겪는 여러 어려움과 고난들을 상징하는 시어다.
작품이 발표된 40년 이전까지 이육사 시인이 수차례의 투옥 생활을 반복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고려할 때, '채찍에 갈겨'라는 표현은 일제에 쫓기는 독립투사의 현실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일제에 의해 심한 고문을 당했던 이육사 시인의 상황을 뜻한다고도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시인은 1934년 일제의 조선군관학교 출신과 검거 시 피검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1]
화자에게 있어서 '북방'은 자의로 오게 된 곳이 아니다. 또한 역사적 사실와 함께 생각해보면, '북방으로 휩쓸려'왔다는 구절은, 헌병과 고등경찰에 의해 조선으로부터 강제 추방을 당했던 당시의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북방'은 1930-40년대의 '만주' 지역을 의미한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당시 조선총독부의 이주 정책으로 만주 지역에는 조선인 이주민들이 많았다.


  • 2연

'서릿발 칼날진 그 위'는 한계에 다다른 상황을 표현한다.
'서릿발'이라는 시어에서 시의 시간적 배경인 겨울이 다시 강조된다.


  • 3연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에서 현재의 위태로운 한계 상황이 드러난다.


  • 4연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에서 화자의 성찰적 의지가 드러난다.
'무지개'는 독립투사로서의 절대적이고 숭고한 굳은 의지, 고고한 정신세계를 뜻한다. '강철로 된' 무지개이기 때문에, 강인한 이미지가 더욱 강화된다.
1942년 이육사의 수필에서 무지개라는 소재가 긍정적인 속성을 드러냈음을 고려하면, 1940년 발표된 작품인 절정에서의 '무지개' 또한 긍정적인 속성의 시어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측 가능하다.[2] 이러한 부분은 이육사 시인이 갖고 있던, 지조와 절개를 중요시하는 전통적인 선비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배경

이 작품이 발표된 1940년도는 한국인의 민족성과 고유한 문화를 말살하려 시도했던 일제의 민족말살통치 시기였다.


의의

정치적 의지와 시가 융합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이육사 시인은 문예가 정치적인 운동이 될 수 있다는 사상을 가지고, 예술과 정치가 결합된 문학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천적 행위로서의 창작 활동에 중점을 두었는데, '절정'은 이러한 그의 사상이 강하게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3]




  1. 신웅순. (2003). 이육사의 시인 정신 - 「절정」과 「교목」을 중심으로. 새국어교육, 66, 401-417.
  2. 류순태. (2013). 이육사 시 「절정」의 비극적 실존 의식과 저항성 연구. 우리문학연구, 38, 387-418.
  3. 조은주. (2017). 이육사의 문학관과 ‘광야(曠野)’의 사상성 - 행동주의, 니체주의를 중심으로 -. 한국문학과 예술, 22, 153-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