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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 병자호란 때에도 출전하였으며, 난이 끝난 뒤 벼슬길에서 물러났지만 다시 등용되었다. | 정묘, 병자호란 때에도 출전하였으며, 난이 끝난 뒤 벼슬길에서 물러났지만 다시 등용되었다. | ||
| − | 동부승지, 직제학을 지내고 '''공조참판'''까지 벼슬이 올랐다. | + | 동부승지, 직제학을 지내고 <font color="#B22222">'''공조참판'''</font>까지 벼슬이 올랐다. |
| − | 80세에 자헌대부에 오르고, '''지중추부사'''를 지내었다. | + | 80세에 자헌대부에 오르고, <font color="#B22222">'''지중추부사'''</font>를 지내었다. |
2025년 6월 24일 (화) 02:28 판
작가
조위한
| 자 | 지세 |
| 호 | 현곡 |
| 출생 | 1567(명종 22년) |
| 사망 | 1649(인조 27년) |
| 본관 | 한양 |
| 관직 | 공조참판, 지중추부사 |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종군하였고, 1609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주부, 감찰 등 관직 생활을 하다가 계축옥사에 연류되어 구금되었다.
이후 인조반정으로 재등용되었다.
1624년 이괄의 난 토벌에 참여하여 수도를 지켰다.
정묘, 병자호란 때에도 출전하였으며, 난이 끝난 뒤 벼슬길에서 물러났지만 다시 등용되었다.
동부승지, 직제학을 지내고 공조참판까지 벼슬이 올랐다.
80세에 자헌대부에 오르고, 지중추부사를 지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