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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으로 찍어내는 형태의 지도이며, 22개의 조각으로 구성돼 병풍처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다. 전체를 펼치면 그 크기가 가로 4m×세로 7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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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으로 찍어내는 형태의 지도이며, 대동여지도 형태의 22첩과 동여도의 특징을 따른 목록 1첩으로 총 23첩으로 구성되 병풍처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다. 전체를 펼치면 그 크기가 가로 4m×세로 7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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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30일 (토) 20:31 판

기본정보

대동여지도

환수일자 2022.07
환수주체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환수경로 구입 (일본)
제작시기 미상
형태 지도
현 소장처 고궁박물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목판본에 동여도의 정보가 추가된 병풍 형태의 지도이다.



외관

형태

목판으로 찍어내는 형태의 지도이며, 대동여지도 형태의 22첩과 동여도의 특징을 따른 목록 1첩으로 총 23첩으로 구성되 병풍처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다. 전체를 펼치면 그 크기가 가로 4m×세로 7m다.

내용

이 대동여지도 판본의 가장 큰 특징은 대동여지도 목판본에 동여도의 지리 정보를 필사했다는 것이다. 목판 지도인 대동여지도와는 달리, 동여도는 손으로 그린 지도이기 때문에 동여도에는 당시의 교통로, 군사 시설 등의 지리 정보와 1만8000개의 지명이 담겨 더욱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즉 대동여지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도로 추정된다. 다만 필체가 김정호와 다르고 인물을 특정할 만한 단서가 없어 이 지도가 만들어진 시기와 필사한 인물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딱 4부만 발행된 동여도의 내용을 입수할 수 있었던 고위층 인물이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출과 환수 스토리

유출 경위

정확한 유출 경위는 알 수 없으나, 조선 국경에 위치한 백두산정계비와 주요 군사시설 간 거리가 표기돼 있고 울릉도 일대가 묘사된 14첩에는 울릉도행 배가 떠나는 위치가 적혀 있는 등의 특징을 볼 때 무역상인 등이 사용하였고 이 과정에서 유출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환수 과정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022년 7월 일본의 한 고서점이 이번 대동여지도를 소장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자료 검토와 전문가 평가 등을 거쳐 복권기금으로 지도를 구입하였다.

의미와 중요성

문화재청은 이 지도에 대해 “대동여지도와 동여도를 합친 지도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조선의 지도 제작 기술을 살펴볼 수 있는 매우 희귀한 연구 자료”라며 “대동여지도가 보급되면서 변화된 형태로 추정된다.”고 평가했다.



환수 후의 활용과 보존

보존

고궁박불관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다.

전시와 연구

최근에 환수 받은 문화유산인 만큼 여전히 전문가들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아직까지 대중들에게 실물이 공개된 사례는 없다.



관련 에피소드

칠곡군에 대해서

환수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준 칠곡군은 우리나라 유일의 양봉 특구[1]이고 아카시아 나무 최대 군락지로 매년 양봉 관련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과거에 왜관이 위치하여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 뿐만 아니라, 독일 계열 수도원인 성 베네딕토 왜관 수도원의 영향으로 독일 문화[2]도 엿볼 수 있는 독특한 지역이다.

바르톨로메오 헨네켄

환수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왜관수도원 소속 독일인 선교사 바르톨로메오 헨네켄은 양봉요지에 대한 조사와 환수를 위해 휴가 기간까지 이용해가며 일했다고 한다.



  1. 이 점이 칠곡군 지자체가 양봉요지 환수에 적극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2. 칠곡군이 독일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사례로는 분도 소시지가 있는데, 20세기 초 독일에서 온 선교사들이 먹던 소시지가 이제는 칠곡군의 대표적인 특산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