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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4년에 배재학당에 입학하였으며 <독립신문>의 국원이자 협성회회보의 편집자로 일했으며 배재협성회, 독립협회에도 참가하였다. 졸업 후 그는 1906년부터 1910년까지 서울시내의 18개 중학교에서 주 평균 40여 시간씩 국어강의를 실시하였으며 하기방학에는 무료로 국어강습소를 열어 청소년들을 교육하였다. 문법체계통일을 국문동식회를 조직하여 연구하였으며 여러 학술적 축적을 거쳐 <국어문법>을 저술하였다. 주시경의 마지막 저술인 <말의소리>는 국어음운학의 과학적 기초를 확립하였으며 구조언어학적 이론을 구체적으로 창안한 세계 최초의 업적으로 높이 평가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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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 ===여운형=== |
2024년 11월 27일 (수) 10:13 판
소개
1885년 선교사 아펜젤러가 세운 한국 최초의 근대식 사립학교로 중등과정을 담당했다. 1886년이 고종이 배재학당이라는 이름을 사하였고 미국인들의 후원을 받아 1887년에 제대로 된 건물을 세웠다. 영어교육을 중점적으로 행했으며 학생자조정책을 채택하여 가난한 학생들이 학교에서 일을 하며 수업료를 벌 수 있도록 하였다.
사회운동
협성회
1896년 13명의 배재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대중계몽을 목적으로 조직한 단체로, 이후 일반인의 입회를 허용하며 1898년에는 300여명의 회원을 두었다. 독립협회와 『독립신문의 계몽사상 그리고 입헌군주제의 실천을 구현하기 위한 사회운동단체로 변모하였다. 협성회는 토론회라고도 불렸으며 자주독립, 자주관계, 민족개혁등의 내용을 논하였고 토론을 보기 위해 많은 청중들이 몰렸다고 한다. 토론의 내용을 홍보하기 위해 1898년부터 협성회회보를 발간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신문인 <매일신문>이 되었다.
출신인물
주시경
1894년에 배재학당에 입학하였으며 <독립신문>의 국원이자 협성회회보의 편집자로 일했으며 배재협성회, 독립협회에도 참가하였다. 졸업 후 그는 1906년부터 1910년까지 서울시내의 18개 중학교에서 주 평균 40여 시간씩 국어강의를 실시하였으며 하기방학에는 무료로 국어강습소를 열어 청소년들을 교육하였다. 문법체계통일을 국문동식회를 조직하여 연구하였으며 여러 학술적 축적을 거쳐 <국어문법>을 저술하였다. 주시경의 마지막 저술인 <말의소리>는 국어음운학의 과학적 기초를 확립하였으며 구조언어학적 이론을 구체적으로 창안한 세계 최초의 업적으로 높이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