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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덕전은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 행사<ref>칭경예식</ref>장으로 쓰기 위해 세워진 서양식 건물로 외교를 위한 영빈관과 알현관으로 사용됐다. 석조전 뒤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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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덕전은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 행사<ref>칭경예식</ref>장으로 쓰기 위해 세워진 서양식 2층 건물로 외교를 위한 영빈관과 알현관으로 사용됐다. 석조전 뒤에 위치한다.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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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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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덕(惇德)은 덕이 토답다는 뜻을 담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유행한 화려한 건축양식으로 세워져 당시에도 큰 존재감을 나타낸 건물로 설계자는 [[사바틴]]으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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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덕(惇德)은 덕이 도탐다는 뜻을 담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유행한 화려한 건축양식으로 세워져 당시에도 큰 존재감을 나타낸 건물로 설계자는 [[사바틴]]으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br/>
 
본래 돈덕전은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 칭경예식에 맞추어 대한제국의 근대 국가로서 면모와 주권 수호 의지를 보여주고자 지은 서양식 영빈관이다. 하지만 콜레라 창궐과 공사 중단 등으로 국제행사는 무산되었고, 이후 돈덕전은 외교를 위한 영빈관 및 알현관으로 사용되었다. 1907년 순종이 즉위한 곳이기도 하다.
 
본래 돈덕전은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 칭경예식에 맞추어 대한제국의 근대 국가로서 면모와 주권 수호 의지를 보여주고자 지은 서양식 영빈관이다. 하지만 콜레라 창궐과 공사 중단 등으로 국제행사는 무산되었고, 이후 돈덕전은 외교를 위한 영빈관 및 알현관으로 사용되었다. 1907년 순종이 즉위한 곳이기도 하다.
 
   
 
   
 
==='''복원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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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고종 승하 뒤 덕수궁이 비면서 돈덕전 또한 방치되었다. 1920년대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는데 그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ref>1921~1926년 사이</ref>. 문화재청은 2018년부터 돈덕전의 설계 및 복원공사를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계속해서 공사가 지연되다 2023년 9월에 복원이 완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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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고종 승하 뒤 덕수궁이 비면서 돈덕전 또한 방치되었다. 1920년대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는데 그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ref>1921~1926년 사이</ref>. 문화재청은 2018년부터 돈덕전의 설계 및 복원공사를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계속해서 공사가 지연되다 2023년 9월에 복원이 완료됐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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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모습을 최대한 고증하여 복원되었으며 복합문화공간으로의 활용을 위해 대한제국 외교사 중심의 전시, 기록보관, 도서열람, 국내외 문화교류와 예술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옛 모습을 최대한 고증하여 복원한 것은 물론, 복합문화공간으로의 활용을 위해 대한제국 외교사 중심의 전시와 기록 보관(아카이브)및 작은도서관, 휴게공간, 바닥공간 보존, 화려한 미디어아트, 키오스크형 전시 등 다양한 전시 장르를 망라하고 있어 다녀온 관람객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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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이 약 127척, 폭 95척<br/>
 
- 길이 약 127척, 폭 95척<br/>
- 함석지붕으로 앞뒤에 서로 크기가 다른 튜렛() 3개를 세워 르네상스와 고딕을 절충한 형식<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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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은 붉은 벽돌과 회색 별돌로 만들어졌으며 중명전, 구성헌과 동일한 방식으로 쌓았다.
- 남면 1, 2층 모두 발코니에 아케이드 장식<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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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석지붕으로 앞뒤에 서로 크기가 다른 튜렛<ref></ref> 3개를 세워 르네상스와 고딕을 절충한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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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면 1, 2층 모두 발코니에 아케이드 장식
  
 
=='''참고문헌'''==
 
=='''참고문헌'''==

2024년 6월 11일 (화) 10:09 판


개요

돈덕전은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 행사[1]장으로 쓰기 위해 세워진 서양식 2층 건물로 외교를 위한 영빈관과 알현관으로 사용됐다. 석조전 뒤에 위치한다.

연혁

연도 내용
902 고종 즉위 40주년
1904 경운궁 대화재
1906 황태자[2] 가례
1907 순종황제 즉위식
192? 철거
2017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 실시
2023 완공, 일반 개방

특징

돈덕(惇德)은 덕이 도탐다는 뜻을 담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유행한 화려한 건축양식으로 세워져 당시에도 큰 존재감을 나타낸 건물로 설계자는 사바틴으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본래 돈덕전은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 칭경예식에 맞추어 대한제국의 근대 국가로서 면모와 주권 수호 의지를 보여주고자 지은 서양식 영빈관이다. 하지만 콜레라 창궐과 공사 중단 등으로 국제행사는 무산되었고, 이후 돈덕전은 외교를 위한 영빈관 및 알현관으로 사용되었다. 1907년 순종이 즉위한 곳이기도 하다.

복원 공사

1919년 고종 승하 뒤 덕수궁이 비면서 돈덕전 또한 방치되었다. 1920년대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는데 그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3]. 문화재청은 2018년부터 돈덕전의 설계 및 복원공사를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계속해서 공사가 지연되다 2023년 9월에 복원이 완료됐다.
옛 모습을 최대한 고증하여 복원되었으며 복합문화공간으로의 활용을 위해 대한제국 외교사 중심의 전시, 기록보관, 도서열람, 국내외 문화교류와 예술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건축 양식

- 길이 약 127척, 폭 95척
외관은 붉은 벽돌과 회색 별돌로 만들어졌으며 중명전, 구성헌과 동일한 방식으로 쌓았다. - 함석지붕으로 앞뒤에 서로 크기가 다른 튜렛[4] 3개를 세워 르네상스와 고딕을 절충한 형식 - 남면 1, 2층 모두 발코니에 아케이드 장식

참고문헌

https://royal.khs.go.kr/ROYAL/contents/R104030000.do?schBdcode=dsg&pageType=story&bdProgramCode=storyCtg6#; https://www.chosun.com/culture-life/archi-design/2023/09/25/Y7BVTHSFXRBDZJ4QJ2L4GXMUFQ/

각주

  1. 칭경예식
  2. 순종
  3. 1921~1926년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