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dh_edu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생애)
(생애)
15번째 줄: 15번째 줄:
 
호러스 뉴턴 알렌은 1858년 오하이오 주 델라웨어에서 태어났다. 북장로교 소속 의료 선교사로 활동하던 알렌은 청나라 상하이에서 의료 활동을 했으나, 그곳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조선으로의 선교를 자청하게 된다. 조선에 파견될 선교사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조선으로 보내지 않으면 일을 그만두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결국 1884년 아내와 한 살 난 아들과 함께 조선으로 향하게 되었다.
 
호러스 뉴턴 알렌은 1858년 오하이오 주 델라웨어에서 태어났다. 북장로교 소속 의료 선교사로 활동하던 알렌은 청나라 상하이에서 의료 활동을 했으나, 그곳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조선으로의 선교를 자청하게 된다. 조선에 파견될 선교사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조선으로 보내지 않으면 일을 그만두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결국 1884년 아내와 한 살 난 아들과 함께 조선으로 향하게 되었다.
  
조선에 도착한 알렌은 주조선 미국공사 루시어스 푸트<ref>'''루시어스 하우드 푸트 (Lucius Harwood Foote, 1826.04.10. ~ 1913.06.04.) :'''  미국의 외교관. 미국이 조선에 파견한 첫 공사였으며, 그 기간은 1883년부터 1885년까지였다.</ref>에 의해 주한미국공사관 소속 무급 의사로 임명되었다. 이는 당시 조선에서 종교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교사 신분으로 활동하는 것이 위험했기 때문이다. 1884년 10월 27일 조선에 입국한 알렌은 불과 38일 만에 갑신정변이 발생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개화파의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매는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을 수술해 목숨을 구한 것이다.
+
조선에 도착한 알렌은 주조선 미국공사 루시어스 푸트<ref>'''루시어스 하우드 푸트 (Lucius Harwood Foote, 1826.04.10. ~ 1913.06.04.) :'''  미국의 외교관. 미국이 조선에 파견한 첫 공사였으며, 그 기간은 1883년부터 1885년까지였다.</ref>에 의해 주한미국공사관 소속 무급 의사로 임명되었다. 이는 당시 조선에서 종교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교사 신분으로 활동하는 것이 위험했기 때문이다. 1884년 10월 27일 조선에 입국한 알렌은 불과 38일 만에 갑신정변이 발생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개화파의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매는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ref>'''민영익 (閔泳翊, 1860 ~ 1914) :''' 조선 후기의 문신. 친청 온건 개화파를 대표하던 인물이었다.</ref>을 수술해 목숨을 구한 것이다.
  
 
민영익의 치료를 계기로 알렌은 조선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1885년 1월 22일, 그는 조선왕립병원 설립 허가서를 제출했고, 고종의 허락을 받아 광혜원을 설립하게 되었다. 광혜원은 조선에서 최초로 서양식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으로, 알렌은 이를 통해 서양 의학을 조선에 전파하였다. 병원의 부지는 갑신정변 때 대역죄인으로 참살당한 홍영식과 그의 아버지의 집을 사용했다.
 
민영익의 치료를 계기로 알렌은 조선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1885년 1월 22일, 그는 조선왕립병원 설립 허가서를 제출했고, 고종의 허락을 받아 광혜원을 설립하게 되었다. 광혜원은 조선에서 최초로 서양식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으로, 알렌은 이를 통해 서양 의학을 조선에 전파하였다. 병원의 부지는 갑신정변 때 대역죄인으로 참살당한 홍영식과 그의 아버지의 집을 사용했다.

2024년 6월 10일 (월) 04:25 판


호리스 뉴턴 알렌
Horace Newton Allen
Horace Newton Allen.jpg
출생 1858.04.23.
사망 1931.12.11
국적 미국
직업 의사, 선교사, 외교관

개요

호러스 뉴턴 알렌(Horace Newton Allen)은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이자 의사로, 고종의 부름을 받아 조선에서 관리로도 활약하였다. 그는 1885년 조선 최초의 근대식 의료 기관인 광혜원[1]을 설립하고 운영하였으며, 이후 주한미국공사관 서기관 및 전권공사로 활동하며 외교 업무에 종사하였다. 알렌은 현대 외과 의학을 조선에 도입하는 데 큰 공로가 있다.

생애

호러스 뉴턴 알렌은 1858년 오하이오 주 델라웨어에서 태어났다. 북장로교 소속 의료 선교사로 활동하던 알렌은 청나라 상하이에서 의료 활동을 했으나, 그곳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조선으로의 선교를 자청하게 된다. 조선에 파견될 선교사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조선으로 보내지 않으면 일을 그만두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결국 1884년 아내와 한 살 난 아들과 함께 조선으로 향하게 되었다.

조선에 도착한 알렌은 주조선 미국공사 루시어스 푸트[2]에 의해 주한미국공사관 소속 무급 의사로 임명되었다. 이는 당시 조선에서 종교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교사 신분으로 활동하는 것이 위험했기 때문이다. 1884년 10월 27일 조선에 입국한 알렌은 불과 38일 만에 갑신정변이 발생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개화파의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매는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3]을 수술해 목숨을 구한 것이다.

민영익의 치료를 계기로 알렌은 조선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1885년 1월 22일, 그는 조선왕립병원 설립 허가서를 제출했고, 고종의 허락을 받아 광혜원을 설립하게 되었다. 광혜원은 조선에서 최초로 서양식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으로, 알렌은 이를 통해 서양 의학을 조선에 전파하였다. 병원의 부지는 갑신정변 때 대역죄인으로 참살당한 홍영식과 그의 아버지의 집을 사용했다.

알렌은 민영익 치료 이후 민씨 집안과 가까워지고 고종의 신임도 얻어 하와이 이민자 모집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하와이의 노동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민자 모집을 공고했고, 많은 조선인들이 하와이로 이주하게 되었다. 하와이로 간 조선인 이민자들은 미국 내에서 한인 여론을 대표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민자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며, 하와이 한인 교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대한제국과의 관계

주미 한국 공사관 설립

1886년, 알렌은 고종의 밀명을 받아 미국으로 파견되었다. 고종은 청나라의 내정 간섭을 극복하고자 미국에 차관을 얻으려 했다. 알렌은 민영익과 박정양을 도와 주미 조선공사관 설립에 기여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청나라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자주 외교를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외교관 활동

알렌은 1890년 주한미국공사관 서기관으로 임명되어 외교 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조선과 미국 간의 외교 관계를 강화하며, 조선의 자주독립을 지지했다. 청일전쟁과 을미사변을 겪으며 조선의 정치적 상황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고, 고종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미국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경제 및 사회적 기여

알렌은 조선의 산업 발전을 위해 미국 자본을 유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광산 개발, 전기 및 전차 도입, 경인철도 건설 등 다양한 산업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특히, 평안북도의 운산 금광 채굴권을 미국의 모스에게 넘겨주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는 조선의 경제 발전과 근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설립된 근대식 병원. 제중원이라고도 부른다.
  2. 루시어스 하우드 푸트 (Lucius Harwood Foote, 1826.04.10. ~ 1913.06.04.) : 미국의 외교관. 미국이 조선에 파견한 첫 공사였으며, 그 기간은 1883년부터 1885년까지였다.
  3. 민영익 (閔泳翊, 1860 ~ 1914) : 조선 후기의 문신. 친청 온건 개화파를 대표하던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