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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스 뉴턴 알렌(Horace Newton Allen)은 1858년 오하이오 주 델라웨어에서 태어나 북장로교 소속 의료 선교사로 활동했다. 초기에는 청나라 상하이에서 의료 활동을 했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조선으로의 선교를 자청하여 1884년 가족과 함께 조선에 도착했다. 당시 주조선 미국 공사 루시어스 푸트는 그를 주한미국공사관 소속 무급 의사로 임명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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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스 뉴턴 알렌(Horace Newton Allen)은 1858년 오하이오 주 델라웨어에서 태어났다. 북장로교 소속 의료 선교사로 활동하던 알렌은 청나라 상하이에서 의료 활동을 했으나, 그곳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조선으로의 선교를 자청하게 된다. 조선에 파견될 선교사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조선으로 보내지 않으면 일을 그만두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결국 1884년 아내와 한 살 난 아들과 함께 조선으로 향하게 되었다.
===조선에서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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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10월 27일 조선에 입국한 알렌은 12월 4일 갑신정변 당시 민영익의 생명을 구하면서 유명해졌다. 이를 계기로 그는 조선 정부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고, 1885년 조선왕립병원인 광혜원을 설립하여 서양 의학을 전파했다. 병원 운영에는 고종과 민씨 척족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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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도착한 알렌은 주조선 미국공사 루시어스 푸트에 의해 주한미국공사관 소속 무급 의사로 임명되었다. 이는 당시 조선에서 종교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교사 신분으로 활동하는 것이 위험했기 때문이다. 1884년 10월 27일 조선에 입국한 알렌은 불과 38일 만에 갑신정변이 발생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개화파의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매는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을 수술해 목숨을 구한 것이다.
===외교 및 사회적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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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은 하와이로의 조선인 이민을 주선하여 많은 이민자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도록 도왔다. 이민자들은 하와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알렌의 노력은 조선과 미국 간의 관계 강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는 조선 사회에 서양 의학과 문화를 전파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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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익의 치료를 계기로 알렌은 조선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1885년 1월 22일, 그는 조선왕립병원 설립 허가서를 제출했고, 고종의 허락을 받아 광혜원을 설립하게 되었다. 광혜원은 조선에서 최초로 서양식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으로, 알렌은 이를 통해 서양 의학을 조선에 전파하였다. 병원의 부지는 갑신정변 때 대역죄인으로 참살당한 홍영식과 그의 아버지의 집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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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은 민영익 치료 이후 민씨 척족과 가까워지고 고종의 신임도 얻어 하와이 이민자 모집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하와이의 노동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민자 모집을 공고했고, 많은 조선인들이 하와이로 이주하게 되었다. 하와이로 간 조선인 이민자들은 미국 내에서 한인 여론을 대표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민자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며, 하와이 한인 교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2024년 6월 10일 (월) 03:57 판


호리스 뉴턴 알렌
Horace Newton Allen
Horace Newton Allen.jpg
출생 1858.04.23.
사망 1931.12.11
국적 미국
직업 의사, 선교사, 외교관

개요

생애

호러스 뉴턴 알렌(Horace Newton Allen)은 1858년 오하이오 주 델라웨어에서 태어났다. 북장로교 소속 의료 선교사로 활동하던 알렌은 청나라 상하이에서 의료 활동을 했으나, 그곳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조선으로의 선교를 자청하게 된다. 조선에 파견될 선교사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조선으로 보내지 않으면 일을 그만두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결국 1884년 아내와 한 살 난 아들과 함께 조선으로 향하게 되었다.

조선에 도착한 알렌은 주조선 미국공사 루시어스 푸트에 의해 주한미국공사관 소속 무급 의사로 임명되었다. 이는 당시 조선에서 종교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교사 신분으로 활동하는 것이 위험했기 때문이다. 1884년 10월 27일 조선에 입국한 알렌은 불과 38일 만에 갑신정변이 발생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개화파의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매는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을 수술해 목숨을 구한 것이다.

민영익의 치료를 계기로 알렌은 조선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1885년 1월 22일, 그는 조선왕립병원 설립 허가서를 제출했고, 고종의 허락을 받아 광혜원을 설립하게 되었다. 광혜원은 조선에서 최초로 서양식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으로, 알렌은 이를 통해 서양 의학을 조선에 전파하였다. 병원의 부지는 갑신정변 때 대역죄인으로 참살당한 홍영식과 그의 아버지의 집을 사용했다.

알렌은 민영익 치료 이후 민씨 척족과 가까워지고 고종의 신임도 얻어 하와이 이민자 모집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하와이의 노동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민자 모집을 공고했고, 많은 조선인들이 하와이로 이주하게 되었다. 하와이로 간 조선인 이민자들은 미국 내에서 한인 여론을 대표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민자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며, 하와이 한인 교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