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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28년, 역사적으로 한국인들에 의해 탄생한 첫 번째 대중가요로 일제강점기 당시의 우리 민족의 아픔을 비쳐 더더욱 사람들의 마을을 끌었던 노래, <황성옛터>에 대한 에피소드도 등장했다. 비가 오는 날 막걸리를 마시다가 만들어졌다고 전해오는데, 순회공연을 마치고 우연히 거닐었던 옛 고려의 황궁 만월대 터에서 느낀 쓸쓸한 감정을 곡에 담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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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background:#99cccc">#아리랑을 리메이크 해야하는 이유</span> | <span style="background:#99cccc">#아리랑을 리메이크 해야하는 이유</span> |
2024년 5월 31일 (금) 22:19 판
1.근대음악을 재즈로 리메이크
2019년 7월, '재즈로 들려주는 근대음악'이라는 공연이 있었다.
- 위 공연에선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이자 사랑받은 대중가수, 윤심덕에 대한 소개를 다뤘다. 주 내용으로. 1926년, 라디오가 등장하기 전인데도 선풍적인 인기를 그녀의 노래 <사의 찬미>. 그리고 그녀의 연정 상대인 김우진과의 이야기가 있다. 노래는 그 제목과도 같게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두 사람의 정사가 더해져 큰 이슈가 되었다고 한다. 원래 있던 멜로디에 자신이 직접 노랫말을 써 부른 번악곡으로, 노래 속에 담긴 사랑 이야기에 현재는 드라마와 뮤지컬로도 세상에 회고되고 있다.
- 1928년, 역사적으로 한국인들에 의해 탄생한 첫 번째 대중가요로 일제강점기 당시의 우리 민족의 아픔을 비쳐 더더욱 사람들의 마을을 끌었던 노래, <황성옛터>에 대한 에피소드도 등장했다. 비가 오는 날 막걸리를 마시다가 만들어졌다고 전해오는데, 순회공연을 마치고 우연히 거닐었던 옛 고려의 황궁 만월대 터에서 느낀 쓸쓸한 감정을 곡에 담았다.
- 곡에 대한 이야기 너머로 이 곡을 부른 가수 이애리수의 흥미로운 일화가 있는데, 노래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스타 가수가 된 그녀가 사랑한 사람과의 연을 위해 노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한다. 그들의 사랑을 반대한 남자의 가족이 가수임을 밝히지 말라고 했던 것. 실제로 80여 년간 부르지 않으며 약속을 지켰다. 96세가 되어 다시 딱 한 번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숨을 고르듯 늘어트리는 창법이 매력적이었으며. 어떻게 보면 타령처럼 들린다는 평을 받았다.
- <빈대떡 신사>는 리메이크가 되어 음악 방송에서도 나온 적이 더러 있었기 때문에, 앞전의 노래에 비해 인지도 있는 노래라고 말할 수 있었다. 1920년대와 1940년대까지, 여러 곡을 보컬과 함께 또는 멜로디만 얹어 진행하였다.
이 곡들은 전부 오래전에 만들어진 노래지만, 그 시대의 애환의 감정이 참여한 사람들 모두의 감정을 울렸다. 공연이 끝난 뒤, 어린 관객층이 늘어나길 기대하는 마음들이 커졌다. 일제의 침략으로 땅은 황망해졌지만, 그 자리에 다시 핀 꽃처럼 다시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어가던 그때, 근대. 그 마음과 함게 한때 이런 노래가 유행했고, 한국의 음악 역사를 바꾸었음을 알리고 깨닫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방향성을 담은 공연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아리랑을 리메이크 해야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