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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예산 수덕사 대웅전(禮山 修德寺 大雄殿)</big>
 
<big>예산 수덕사 대웅전(禮山 修德寺 大雄殿)</big>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고려 충렬왕 34년(1308)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고려 충렬왕 34년(1308)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 <ref>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2%B0_%EC%88%98%EB%8D%95%EC%82%AC_%EB%8C%80%EC%9B%85%EC%A0%84 예산 수덕사 대웅전</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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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82%B0_%EC%88%98%EB%8D%95%EC%82%AC_%EB%8C%80%EC%9B%85%EC%A0%84 위키백과_예산 수덕사 대웅전</ref>
*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수덕사안길 79 (덕산면, 수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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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수덕사안길 79 (덕산면, 수덕사)
*특징: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수덕사의 대웅전으로, 국내에 현존하는 목조건물 가운데 건축 시기가 명확한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며, 한반도 목조건축물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문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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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국보 제 49호
의상이 화엄의 큰 가르침을 베풀던 곳으로, 의상을“부석존자"라 하고, 그가 창시한 화엄종을“부석종"이라 하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엄격한 양식을 가졌던 삼국시대의 절과 달리 자유로운 건물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고려와 조선 시대로 갈 수록 점점 심해진다. 회전문, 범종각, 법당, 안양문, 무량수전의 차례로 이루어지는 공간 구조는 화엄경의 질서와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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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
*사건: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짓고, 공민왕 7년(1358)에 왜구의 침입으로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짓고 광해군 때 새로 단청한 것으로,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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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 구조는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사람 인()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ref>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ccbaCpno=1113400490000 문화재청_예산 수덕사 대웅전</ref>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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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대웅전의 벽화에 관해서는 발견 당시 [[부석사]] [[조사당]] 벽화와 함께 고려시대의 불교 벽화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남은 대단히 귀중한 유물이었으나 대웅전 해체 수리 중의 벽화 발견 당시에도 이미 작품의 여러 군데가 훼손된 상태였다. 또한 벽화 전체적으로도 그림 형상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한계로 인해 벽화는 보존 처리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해방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없지만, 벽화가 완전 소실되어 현재는 모사도만이 남아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의상이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의상이 신라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게 했고, 절터까지 따라와서 절을 세우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본래 이 절터에는 사교의 무리가 모여 있었는데, 의상이 이 곳에 절을 세우려고 하자 선묘가 무거운 바위를 사교의 무리들의 머리 위로 띄워 이곳에 절을 세울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돌을 ‘부석’이라 불렸으며 사찰 이름을 ‘부석사’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선묘 신룡은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으로 변신하여 무량수전 뜰아래 묻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무량수전 옆에 큰 바위가 있는데,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선묘가 띄웠던 바위이며 아직도 떠 있다고 한다.<ref>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29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부석사</ref>
 
  
 
===관련 건축물===
 
===관련 건축물===
*[[무량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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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조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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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58753&cid=46656&categoryId=46656 수덕사 3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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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1275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
  
 
==<big>관계</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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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출처</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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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1일 (월) 14:04 기준 최신판

예산 수덕사 대웅전

정의

건축물 정보

예산 수덕사 대웅전(禮山 修德寺 大雄殿)

  • 역사적 시대: 고려시대-고려 충렬왕 34년(1308)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1]
  • 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수덕사안길 79 (덕산면, 수덕사)
  • 특징: 국보 제 49호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 건축물 구조는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2]

수덕사 대웅전의 벽화에 관해서는 발견 당시 부석사 조사당 벽화와 함께 고려시대의 불교 벽화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남은 대단히 귀중한 유물이었으나 대웅전 해체 수리 중의 벽화 발견 당시에도 이미 작품의 여러 군데가 훼손된 상태였다. 또한 벽화 전체적으로도 그림 형상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한계로 인해 벽화는 보존 처리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해방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벽화가 완전 소실되어 현재는 모사도만이 남아있다.

관련 건축물

관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