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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괘불은 평소에는 함에 넣어 전각 안에 보관되고, 의식이 있는 날 아침에 중정으로 옮겨와 사용되었다. 법당에서 불화를 옮겨 와 펼치는 절차를 '''괘불이운(掛佛移運)'''이라고 한다. 이때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암송하는 진언(眞言)과 게송(偈頌)은 석가모니불이 부처의 설법을 듣고 영취산으로부터 내려와 법을 설하는 과정을 상징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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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에서 괘불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나고 조선 후기에 접어들며 대규모 천도 의식(薦度儀式)<ref>죽은 이의 영혼을 좋은 세계로 보내고자 행하는 종교의례. 불교의식.</ref>이 활발히 이루어지며 필요에 의해 본격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야외 의식을 위해 전용 탱화가 필요했던 조선 후기 불교신앙의 특징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괘불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적되는 것은 1622년 조성된 사진으로 제시된 죽림사 세존괘불탱이다. 현재 연구를 통해 17세기~20세기에 걸친 괘불 100여 점이 조사된 상태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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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하품상생인.jpg|하품상생인- 12세기목조 결하품상생인(結下品上生印) 아미타여래좌상 | ||
+ | 파일:하품중생인.jpg|하품중생인- 삼척 운흥사 목조 아미타불 좌상 | ||
+ | 파일:하품하생인.jpg|하품하생인- 순천 선암사 금동 관음보살 좌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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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0일 (일) 20:16 판
정의 및 설명
괘불(掛佛)이란 야외에서 개최되는 불교의식에 사용하기 위해 제작된 대형 불화를 의미한다. 괘불화(掛佛畵) 또는 천이나 종이 그려 부처, 보살 등을 벽에 거는 탱화(幀畵)의 일종이므로 괘불탱(掛佛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괘불(掛佛)'이라는 명칭은 '불화를 건다'라는 의미의 '掛(걸 괘)-佛畵(불화)'에서 유래되어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불화는 사찰의 전각 내부에 봉안하는데, 괘불의 경우 전각 외부에 설치되기 때문에 그 크기가 매우 크다. 주로 야외에서 개최되는 의식은 사찰의 주전각 앞 중정(中庭)에서 진행되었고, 괘불화는 그에 맞게 대부분 세로 10m가 넘는 대형 화폭으로 조성되었다.
괘불은 평소에는 함에 넣어 전각 안에 보관되고, 의식이 있는 날 아침에 중정으로 옮겨와 사용되었다. 법당에서 불화를 옮겨 와 펼치는 절차를 괘불이운(掛佛移運)이라고 한다. 이때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암송하는 진언(眞言)과 게송(偈頌)은 석가모니불이 부처의 설법을 듣고 영취산으로부터 내려와 법을 설하는 과정을 상징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
한국에서 괘불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나고 조선 후기에 접어들며 대규모 천도 의식(薦度儀式)[1]이 활발히 이루어지며 필요에 의해 본격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야외 의식을 위해 전용 탱화가 필요했던 조선 후기 불교신앙의 특징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괘불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적되는 것은 1622년 조성된 사진으로 제시된 죽림사 세존괘불탱이다. 현재 연구를 통해 17세기~20세기에 걸친 괘불 100여 점이 조사된 상태이다.
내용
영산회
천도의식
그 외
도상
의의
- ↑ 죽은 이의 영혼을 좋은 세계로 보내고자 행하는 종교의례. 불교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