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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에, 인문사에서 최재서가 친일 문학으로 연결되는 가교 구실로 창간한 문예 잡지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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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장편소설을 기획하고 『조선 문예연감』을 간행하는 등 조선 문단에 많은 기여를 한 인문사는 『인문평론』 폐간 이후 일본어 문학 서적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로 바뀌어 조선문인협회의 기관지인 『국민문학』, 『국민시인』을 발행하면서 총독부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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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1939년에, 인문사에서 최재서가 친일 문학으로 연결되는 가교 구실로 창간한 문예 잡지이다.<br/>
 
이 잡지는 『[[문장]]』과 함께 문학지의 대표적 수준의 잡지로 전 문단인을 망라하였다.
 
이 잡지는 『[[문장]]』과 함께 문학지의 대표적 수준의 잡지로 전 문단인을 망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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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10월에 창간, 1941년 4월에 폐간되었다. 편집, 발행인은 최재서(崔載瑞)이다. 창간 후 권두언에서 문학자들도 건설사업에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일본의 침략전쟁을 긍정하고 합리화하는 데 앞장을 섰다.
 
1939년 10월에 창간, 1941년 4월에 폐간되었다. 편집, 발행인은 최재서(崔載瑞)이다. 창간 후 권두언에서 문학자들도 건설사업에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일본의 침략전쟁을 긍정하고 합리화하는 데 앞장을 섰다.
 
==폐간==
 
==폐간==
1941년 4월호를 마지막으로 인문평론은 폐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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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평론』은 창간당시부터 일본의 침략정책에 적극 호응하였고, 계속해서 ‘국민문학의 선도적 역할’을 실천하다가 월간지 『국민문학』에 그 사명을 계승시키면서 1941년 4월호를 마지막으로 인문평론은 폐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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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류호연]]

2023년 12월 10일 (일) 12:56 기준 최신판

인문평론.png

개요

인문평론에 관해 설명하는 페이지이다.

설명

전작장편소설을 기획하고 『조선 문예연감』을 간행하는 등 조선 문단에 많은 기여를 한 인문사는 『인문평론』 폐간 이후 일본어 문학 서적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로 바뀌어 조선문인협회의 기관지인 『국민문학』, 『국민시인』을 발행하면서 총독부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다.
1939년에, 인문사에서 최재서가 친일 문학으로 연결되는 가교 구실로 창간한 문예 잡지이다.
이 잡지는 『문장』과 함께 문학지의 대표적 수준의 잡지로 전 문단인을 망라하였다.

개설

1939년 10월에 창간, 1941년 4월에 폐간되었다. 편집, 발행인은 최재서(崔載瑞)이다. 창간 후 권두언에서 문학자들도 건설사업에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일본의 침략전쟁을 긍정하고 합리화하는 데 앞장을 섰다.

폐간

『인문평론』은 창간당시부터 일본의 침략정책에 적극 호응하였고, 계속해서 ‘국민문학의 선도적 역할’을 실천하다가 월간지 『국민문학』에 그 사명을 계승시키면서 1941년 4월호를 마지막으로 인문평론은 폐간 되었다.